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硏究IN 현실적용 가능성 고민은 국책연구자의 숙명오랜 경륜과 지혜를 갖춘 선배 연구자, 열정과 포부 가득한 신입 연구자가 국책연구자로서의 연구철학을 소통하기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 이번 호에서는 농림경제 및 농촌사회를 종합적으로 조사·연구해 농업·농촌정책 수립 방향을 제시해 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박대식 명예선임연구위원, 김수린 부연구위원이 만났다. 박대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이하 박대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생활을 한 지도 벌써 27년이 되었네요. 제 고향은 농촌인 경북 상주입니다. 농촌 출신으로 농사를 도우며 사회경제적으로 정말 어려운 농촌의 현실을 생생하게 경험하며 성장했습니다. 대학은 사회학과에 진학했는데, 제 출신이 그래서인지 농촌사회학을 배우고 농촌 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사회조사에 참여하면서 농촌 주민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국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농촌 빈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4년 연구원에 입사했지요. 입사 후부터 명예선임연구위원이 된 지금까지 저는 농촌복지 증진 및 농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관한 연구에 매진해왔습니다. 김수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하 김수린) 대선배님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요, 그중에서도 노인복지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구체적으로 노인 개인의 삶에 사회와 환경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aging in place(내 집에서 나이 들기)’의 토대가 되는 고령 친화 환경을 비롯해 능동적인 노년을 지원하는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 등을 연구해왔습니다. 박대식 국책연구원 생활을 하게 되면 이론과 현장을 모두 잘 아는 연구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거기에 저의 경우는 농촌 주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고, 기존 정책의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가장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하게 되었지요. 당시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로 새로운 다자간무역협상이 타결되고, 1995년에는 WTO가 출범하며 무역자유화 및 농산물 시장 개방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연구원은 새로운 농림수산 정책의 목표와 과제 등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며 농업 경쟁력 강화와 복지정책을 강조하던 상황이었지요. 제가 입사하던 때와 지금은 농촌을 둘러싼 환경이 사뭇 다릅니다. 김수린 저의 경우는 농촌을 정면에서 연구하는 국내 유일의 국책연구기관에 소속된 만큼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있는 농촌의 노인복지 이슈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은 농촌의 과소화, 노령화와 맞물려 국내 고령자 중에서도 열악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농촌의 노인복지를 연구하는 사회복지라는 학문이 보다 취약하고, 소외된 계층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원하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제 개인적 믿음과도 부합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전방위로 노력해오다 박대식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주로 농촌복지 증진 및 농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관해 연구해왔습니다. 대표 연구는 농촌 다문화가정 연구와 농촌 노인 관련 분야입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농촌 다문화 연구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상황이었는데, 농촌 현장에 방문할 때마다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8년에 ‘농촌의 다문화가정 실태와 정책 방향’이라는 연구를 처음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농촌 다문화가정이 사회적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2011년에는 ‘농어촌 다문화가족의 사회 적응 실태와 정책과제’, 2018년에는 ‘농촌 다문화가족의 사회통합 실태’, 2020년에는 ‘결혼이민여성 농업교육 개선 방안 연구’ 등을 연구했습니다.또한 1996년 ‘농어촌의 노인복지 실태와 정책 방향’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농촌 노인복지 실태를 연구해 농촌 노인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2000년에는 ‘ 노령 농업인의 영농 참여와 생산적 복지 대책’, 2006년에는 ‘농촌 노인의 사회안전망 실태와 개선 대책’, 2013년에는 ‘농촌 노인 일자리의 현황과 정책과제’, 그리고 2019년 정년퇴직을 하기 직전까지 농촌 노인의 사회보장 실태와 정책 개선 방안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2005년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 기본 계획’이 시작되어 지금 4차 계획까지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농어촌에 최소한의 공공서비스 목표 수준을 정하는 제도 등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제 연구 결과가 정책을 바꾸고, 기존 제도의 주요 문제점이 해결될 때 연구자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자로서 앞으로도 할 일이 정말 많을 겁니다. 김수린 저는 이제 막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입사 전에는 관심 있는 연구 주제를 향후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기관이 어디일지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입사를 준비하며 개별 국책연구기관의 특성과 지향점이 잘 드러나는 연구 보고서, 간행물 등을 열심히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본인의 강점이 무엇이고, 해당 기관에 입사할 경우 어떠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사실 입사 전에는 국책연구기관이라는 명칭이 주는 무게감에 ‘다소 무겁고 딱딱한 조직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험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조직문화가 유연하고, 연구자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연구자의 시간을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입니다. 박대식 그동안 연구원의 연구 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는 연구의 자율성이 대체로 보장되었고, 연구과제의 제안이나 채택 과정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지요. 좀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소수의 연구과제에 몰입해서 연구할 수 있고, 연구과제도 연구자가 선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수린 국책연구를 수행하는 체계나 절차가 지금과는 좀 달랐나요? 박대식 당시에는 농림부에서 정책 연구를 요구하기보다 우리 쪽에서 선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연구과제도 우리가 제안하고 농림부에서 응하는 경우가 꽤 있었지요. 반면 지금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국무총리실 등 여러 기관이 관계하고 있다 보니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다부처적 시각이라든가 중장기적 과제를 발굴하는 면에서는 더 효과적으로 변화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끊임없이 관련 정책 변화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농촌 현장에도 자주 찾아갔습니다. 또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농림축산식품부나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의 위원회나 작업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농촌복지 삼총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팀워크를 맞춰 연구와 연구 성과 확산에 힘을 쏟을 수 있게 해준 동료가 곁에 있었다는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린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바로는 연구원의 조직문화가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데 스스럼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매주 월요일에 진행하는 ‘KREI 이야기’라는 토론회는 저와 같은 신입 연구원들에게 농업·농촌의 현안을 쉽게 파악할 수 있 게 해준다는 점에서 감사한 기회입니다. 박대식 저의 신입 연구위원 시절에는 담당하는 연구과제나 연구 이외의 업무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연구 성과 확산, 활용성 제고 등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사실 최근 젊은 박사들은 업무가 너무 과중해서 이런 데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면이 있습니다. 한 가지 조언하자면 연구만큼이나 연구 성과 확산, 활용성 제고에도 노력과 시간을 할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좋은 연구가 어떤 것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출발은 알 것 같습니다.저는 좋은 연구는 좋은 질문에서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나 현상이 있을 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지나치지 않고해결을 위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 김수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현실 적용, 국책연구자의 숙명이자 자부심 김수린 저는 국책연구는 일반연구에 비해 과제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국책연구를 통해 재현하는 정책과제와 전략이 현실 적용 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할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연구자의 종합적 시각과 더불어 좀 더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이 국책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가 부딪히는 주요한 어려움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대식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구 만족도 향상이나 현실 적용을 위해 다양한 주체로 구성된 정책 회의, 전문가 회의, 집단심층면접(FGI)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연구에 반영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중앙정부의 위원회라든가 작업팀, 대통령 자문기구의 전문위원으로도 참여해서 현안이나 쟁점을 해결해 연구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제 전공 분야가 우리 연구원의 주류 분야라 할 수 있는 경제학이나 농업경제학이 아니다 보니 엄청난 노력을 해야 연구과제가 통과되는 경향이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연구원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보람 있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연구 제안서가 신규 기본 과제로 선정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같은 부서원뿐 아니라 기획조정위원회 위원들과도 의사소통을 활발히 해야 합니다. 후배 연구인들이 농업·농촌 분야 최고의 싱크탱크 일원으로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최고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해주면 좋겠습니다. 김수린 신입 박사이다 보니 앞으로의 연구원 생활이 어떻게 될까 관심이 많은데, 박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염두에 두고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대식 한 가지 더 조언하자면 앞으로 우리 연구원이 사회 변화에 부응해 앞서가는 연구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현행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는 농업의 산업적 특성이나 지역적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서 복지 사각지대가 광범위한 실정인데, 농업·농촌에 적합한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주면 좋겠습니다. 지나치게 전문 영역에 한정해서 사회보장 전반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농촌복지를 담당하는 후배님들은 사회보장제도 전반을 어느 정도 포괄할 수 있는 전문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 애써주시기 바랍니다. " 농어촌에 최소한의 공공서비스 목표 수준을 정하는 제도 등 새로운정책을 도입하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고자부합니다. 제 연구 결과가 정책을바꾸고, 기존 제도의 주요 문제점이해결될 때 연구자로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자로서 앞으로도 할 일이 정말 많을 겁니다. " 박대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좋은 연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천생 연구인들 박대식 저는 좋은 연구에 대한 원칙이 있습니다. 선행 연구와 본연구와의 차별성이 분명하고, 문제의식이나 연구 가설이 명확하며, 충분한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정리해 농촌 주민의 복지 및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 연구자는 선행 연구나 관련 연구를 철저히 검토하고, 양적·질적 분석을 조화시키며, 관련 정책의 현황과 문제점을 검토하고 이론적 분석틀을 명확하게 정립하며, 가능한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김수린 좋은 연구가 어떤 것이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출발은 알 것 같습니다. 저는 좋은 연구는 좋은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문제나 현상이 있을 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지나치지 않고 해결을 위한 질문을 던지는 거죠. 마지막으로 선배님은 어떤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박대식 내년에는 연구원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는데요, 항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연구자, 농촌 사회복지 분야의 최고 전문가, 후배들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선배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서를 많이 한 사람으로도 기억해주면 좋겠네요. 김수린 저는 ‘믿음직한’이라는 단어가 종합적 평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믿음직하다고 표현할 때는 신중하고 성실하며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 역시 ‘믿음직한’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동료이자 연구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박대식, 김수린한국농촌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2021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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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위한 제언 2021년에 돌아보는 조선 건국"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국가는 민(民)에 의존한다. 따라서 민은 국가의 근본이요,군주의 하늘이다." 우리나라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흔히 반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고조선 건국 이후 3000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미국은 물론이고 소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서유럽 국가보다 역사가 훨씬 더 길다. 왕조의 수명 또한 길었다. 고려와 조선은 500년 안팎, 고구려·백제·신라는 100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 한국사에서 왕조가 교체된 것은 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간 두 번밖에 없었다. 또 외부 세력의 정복에 의한 왕조 교체가 없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수많은 외침이 있었지만 그로 인해 멸망에 이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왕조 교체는 철저하게 내부의 문제로 진행되었다. 즉 신라 사람들이 고려를 세웠고, 조선을 건국한 것 역시 고려 사람들이었다. 고려 사람들은 왜 자기 나라의 문을 닫고 새 왕조 조선을 개국했을까? 고려 말의 세 가지 위기 14세기 후반, 고려왕조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첫 번째 위기는 원-명 교체로 인한 국제정세의 변동에서 비롯되었다. 고려는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명의 철령위 설치와 고려의 요동 출병은 외교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 위기는 불교-유교 교체에 따른 사상적 충격이었다. 고려후기에 수용된 성리학은 “불교는 이단이며, 이단은 배척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고려 불교계는 이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 실패가 성리학을 앞세운 새 왕조 개창의 빌미가 되었다. 세 번째는 폭정이었다. 무신정권, 몽골과의 전쟁, 원의 간섭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고려는 오랫동안 개혁의 기회를 갖지못했다. 각종 제도는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했고, 낡은 제도 위에서 집권 세력은 부패했으며, 그 피해는 오롯이 백성들의 몫이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토지와 노비, 두 측면에서 나타났다. 특히 토지문제가 심각했다. 권력자들이 드넓은 농장을 만들면서 백성들의 땅을 빼앗은 것이다. 농장을 경작할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이번에는 양인을 억지로 노비로 만들었다. 모두가 불법행위였다. 경작할 토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살길을 찾아 정처없이 떠돌거나 스스로 권력자의 노비가 되었고, 도적이 되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 현실을 ‘국지불국(國之不國)’, 즉 “이게 나라냐!”며 개탄했다. 공민왕은 고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왕은 전격적으로 반원운동을 일으켜 원 세력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을 뿐 아니라 곧바로 개혁에 착수했다. 개혁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공민왕이 반개혁세력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 뒤로 폭정은 공민왕 이전보다 더 심해졌고, 고려 왕조는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정도전의 등장 정도전(1342~1398)은 공민왕 때 20대의 신진 관료로서 개혁 과정을 목격했다. 공민왕 암살 후 반대파에 의해 개혁의 성과가 부정되는 것을 보고 동료들과 함께 저항했고, 그 때문에 나주 거평부곡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지켜보면서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의 인생에서 이른바 ‘민의 발견’이라고 평가받는 대목이다. 유배에서 풀린 뒤 정도전은 이성계를 찾아갔다. 이성계는 홍건적과 왜구를 격퇴하며 명장으로 성가(聲價)를 올렸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나서 건넨 첫마디는 “훌륭합니다.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못 하겠습니까”였다. 만남 이후 이성계는 정치의 길로 들어섰고, 정도전은 이성계의 오른팔이 되었다. 1388년 위화도회군으로 이성계가 권력을 잡자 개혁이 재개되었다. 토지개혁이 가장 먼저였다. 이때는 공민왕의 개혁에서 한 걸음 나아가 좀 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수조권의 불법 행사를 금지한 것이었다. 개혁세력은 제도를 고쳐 불법적인 수조권 행사를 근절하고자 했다. 그런데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비록 불법이지만 오랜 관행이라는 논리였다. 오랫동안, 누구나 다 하는 일이었기에 불법행위에 대한 죄의식도 없었다. 이렇게 고려왕조의 위기는 모르는 사이에 누적되고 있었다. 민(民)이 근본인 나라를 만들자 토지개혁이 성공하고 새로운 토지제도로 과전법이 제정되었지만, 정도전은 그 개혁이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토지가 없어서 남의 땅을 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더 근본적인 개혁을 구상했다. 즉, 국가의 모든 토지를 공전(公田)으로 만들어, 농민들에게 골고루 분배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모든 농민이 자기 토지를 소유하고, 조세로 낸 나머지 10분의9로 먹고살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러한 구상에는 토지 공개념과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정도전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민본(民本), 즉 민이 국가의 근본이라는 생각은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것을 연장해서 정도전은 ‘군주가 민심을 잃으면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민심을 잃은 고려왕조를 민이 버려야 한다는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러한 혁명론(革命論)을 바탕으로 조선이 건국되었다. 뒷날 정도전은 군주와 국가와 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군주는 국가에 의존하고,국가는 민에 의존한다. 따라서 민은 국가의 근본이요, 군주의 하늘이다.” 조선은 14세기 후반 원-명 교체, 불교-유교 교체에 대응해서 친명(親明) 노선의 성리학 국가로 탄생했다. 또한 민본사상을 앞세워 고려 말의 폭정을 몰아내고 건국한 나라다. 고려 사람들은 나라를 바꾸는 거대한 혁신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했다. 혁신이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2021년에 조선 건국을 돌아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이익주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2021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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