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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한, 보행자를 위한 더 나은 도시공간을 꿈꾸다

오성훈, 남궁지희건축공간연구원 지속가능공간본부 선임연구위원,   건축공간연구원 지속가능공간본부 부연구위원 2023 가을호
일자, 장소
일자 장소
2023년 10월 12일(목) 건축공간연구원
우측부터 오성훈건축공간연구원 지속가능공간본부 선임연구위원
남궁지희건축공간연구원 지속가능공간본부 부연구위원

지속가능한 도시공간 조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보행권의 중요성이 주목받고 있다. 세계 선진 도시들도 차량이 중심인 도시 공간을 사람 중심, 보행자 중심으로 전환하는 추세다. 보행권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확산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는 연구자들, 보행 안전과 편의 증진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건축공간연구원의 두 연구자를 만나 그들이 꿈꾸는 보행도시와 연구에 관한 생각을 들어봤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지속가능공간본부 선임연구위원(이하 오성훈)

저는 도시설계를 전공했고 석사과정 때부터 보행환경 개선에 관심을 갖고 관련 연구를 해왔습니다. 현재 보행환경연구센터장을 맡고 있기도 하고요. 이전 시대에는 거장의 미적 감각이나 역량에 의지해 도시 설계가 이뤄졌는데 현대에는 도시 시스템이 복잡해지면서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됐죠. 어떤 근거에 기반해 도시 설계가 이뤄져야만 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고려 대상이 무엇인가 물음을 던진다면 도시를 체험하고 이용하는 주체인 보행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보행자 행태, 보행환경 설계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왔습니다.

남궁지희 건축공간연구원 지속가능공간본부 부연구위원(이하 남궁지희)

저는 건축학을 전공했는데 개별 건축물 단위를 넘어서서 그것을 뒷받침하고 연결해주는 보행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보행 공간이 건강 측면은 물론 교통체계의 지속가능성, 혹은 공공 공간과 장소, 지역경제 활성화 등 굉장히 다양한 부분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분야에서도 메인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이유로 이 분야를 열심히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특히 공공성과 장소성에 주목해 현상을 분석하고 정책적 대안을 내서 개선해나가는 과정에 매력을 느꼈는데요. 그런 측면에서 주도적으로 정책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곳이 건축공간연구원이라 생각해 이곳에 입사하게 됐죠.

한층 진일보한 보행권 정책

오성훈

보행 연구의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아무래도 법·제도적 측면에서 「보행 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이 도입됐다는 점이겠죠. 처음 보행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런 법령이 없었으니까요. 보행 관련 정책이나 사업의 근거법령을 만들게 됐다는 점, 그리고 보행자우선도로라는 도로 유형을 신설해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죠. 우리가 원하는 수준까지 도달하진 못했지만 어쨌든 보행자를 우선시하는 법적 근거와 규제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지난해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보행자의 통행우선권을 부여하게 됐고, 운전자가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법적 지위까지 강화됐죠. 법령 도입부터 법적 지위 강화까지 거의 10년이 걸린 셈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 연구원이 시범사업의 설계나 운영, 평가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지원해왔습니다. 그 외에도 차로를 줄이는 ‘도로 다이어트’ 사업이라든지 보행환경 개선사업, 최근 각 지자체 단위로 시범사업을 시행 중인 보행환경에 대한 종합정비사업까지 연구 주제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남궁지희

보행자우선도로를 포함해 기존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시범사업들은 최종적인 정착·확산 단계에서 지자체 단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별 지역에서 해줘야 하는 역할이나 권한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그런 맥락에서 지역 차원의 보행 안전 수준과 정책적 노력의 정도를 계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지수를 개발했어요. 처음부터 제가 참여한 건 아니고 이미 몇 년에 걸쳐 그러한 논의와 연구가 이뤄져왔죠. 오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보행안전법에 법정 지수를 산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이 되면서 3년간 시범 개발과 운영을 해왔고 내년도에 정식 공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자체별로 보행환경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좀 더 합리적인 정책 수립으로 이어갈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겠죠. 현재 단계에선 지자체의 접근성이나 활용의 용이성 측면에 중점을 두고 보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안에 대해 앞선 진단을 할 수 있는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정책연구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성훈 건축공간연구원 지속가능공간본부 선임연구위원

정책연구자에게 요구되는 주체적인 역할

오성훈

정책연구자로선 관련 부처 내에서 정책 전반의 초기부터 종료 시점까지 주도적으로 과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정부 부처를 보면 하나의 과에서 다루는 영역이 굉장히 넓고 공무원들이 순환보직에 따라 역할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새롭게 제기되는 현안들을 신속하게 파악해 대처하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런 이유로 어떤 문제에 대해 앞선 진단을 할 수 있는가, 그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정책연구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연구자라면 자신의 연구에 매진하는 가운데 부처의 현황이나 현안 자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남궁지희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어떤 현안에 대해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실현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연구 중심의 교육·연구기관과 강한 차별성을 띤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한편으로 국책연구기관은 제가 생각하기에 교육이나 직무역량과 관련해 성장의 기회가 굉장히 많다고 느끼는데요.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현장을 둘러보는 것 자체도 매우 좋은 경험이 되거든요. 그래서 기회가 될 때마다 스스로의 성장을 염두에 둔 경험을 많이 하고 싶지만 원내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량이 상당하고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그런 기회나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가용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고요.

오성훈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자 본인만의 연구주제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박사 과정 때부터 끈질기게 의문점과 개선 방향을 지속적으로 탐구해가면서 그 분야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연구 주제를 발전시켜나가는 자기만의 스토리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초를 키우듯이 말이죠. 자신의 전문성과 장점을 살려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 분야를 긴 호흡으로 개발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연구기관 차원의 역할 설정과도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연구기관을 부처에 대해 실무 지원하는 곳으로만 본다면 혁신적인 연구를 하긴 힘들겠죠. 누가 와서 해도 될 만한 정도의 연구로는 혁신적인 정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도시 조성이라는 시대적 화두

남궁지희

최근 들어 대규모 재난·재해,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그 현상에 대해 들여다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평소 환경이나 안전, 공간에 대해 지니고 있던 감수성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공간과 환경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더라도 잘 관리되고 작동되고 있다는 믿음을 줄 때까지 관리 시스템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저희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고요. 특히 지난해 이태원 참사 이후로 교통안전뿐 아니라 보행환경과 관련해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위험요소를 통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주제를 확장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거기에는 요즘 길거리에서 자주 일어나는 묻지마 범죄 같은 안전 측면도 포함되고 시설물 관련 낙상이라든지 폭우 등으로 인한 안전사고도 포괄적 안전 개념으로 다루게 됩니다. 또한 모빌리티와 관련해 새로운 교통수단이 등장하다 보니 기존의 보행환경이나 시설물 관련 기준에서 새롭게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오성훈

말씀하신 부분은 결국 지속가능한 도시 공간 조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화두가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지속가능한 도시라 하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저에너지 도시, 탄소중립 도시, 저비용의 도시, 자동차 없이 살 수 있는 도시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공공성이 있는 생활공간을 복원하고 거대 건축물에서 벗어나 더 적은 비용으로 유지·관리가 가능하고 대규모 재해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건축물을 설계하고 도시를 조성하는 원리와 계획에 근원적인 변화를 요구받는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나 토지 이용, 녹색건축물 등 다양한 요소를 조합하며 새로운 형태의 도시 공간을 창출해야만 하는 시대적 과제가 주어진 셈입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

남궁지희

다른 기관 연구자가 저희 연구에 자문을 해주거나 공동연구 기관으로 연구에 참여한 경우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기관 간 협동연구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는데요. 기관 간 협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각자 연구기관에서 방향성이나 전문성이 제대로 정립됐을 때 협력의 시너지도 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성훈

서로 연구 분야가 다른 기관들과 협력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롭고 힘든 작업입니다. 협동연구가 잘되려면 기관 간의 경쟁관계를 넘어서야 하고 어떤 면에선 기관과 연구자 간의 관계도 느슨해질 필요가 있는데 말처럼 쉽진 않거든요. 다른 연구기관들과 협동연구를 하다 보면 누군가 앞서나가 손을 잡으려는 과정이 필요한데 업무적인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고 뚝뚝 끊기는, 형식적인 협동연구가 이뤄지기 쉽습니다. 평소 자기 분야에서 다루지 못했던 것을 상대의 연구성과를 통해 채워가며 확장하는 방식의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한계가 있죠. 또 하나의 문제라면 과연 부처 간 협력은 가능한가 하는 점입니다. 부처 간에도 심도 있는 고민과 논의를 통해 함께 개선방안을 찾을 수 있는 협력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죠.

남궁지희

정책연구자로서 일을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연구자는 지식을 생산하는 동시에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갈수록 고민이 많아지는 지점이기도 한데요. 예전에 학교에서는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데이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 내용을 어디에 어떤 식으로 전달해 흘러가도록 할 것인가를 중요하게 다뤄야 하는 위치에 놓인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새로운 지식을 쌓아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확산하는 과정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오성훈

저는 논란이 없는 연구는 조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느 연구 결과가 사회적으로 아무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 연구가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속가능한 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현재의 교통체계를 바꿔야 한다든지, 횡단보도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문제 제기를 한다면 이는 충분히 논쟁이 가능한 주제라서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가능성이 있죠. 좋은 연구는 주제 선정의 적절성이 확보돼야 하고, 그러한 주제는 결국 논란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논란을 정리해가는 과정이죠. 정책연구는 과학적인 사실을 검증하는 측면도 있지만 사회현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정책 수립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입니다. 주어진 여건에서 불완전하지만 최선의 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정책연구자에게 필요한 윤리적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안에 새로운 지식을 쌓아놓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확산하는 과정에 좀 더 관심을 갖고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남궁지희 건축공간연구원 지속가능공간본부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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