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생각
‘봐야 할 것’을 봤다는 독후감(讀後感)
예전에 일본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다니던 대학의 어학연구소에서 초급반부터 시작했는데 운 좋게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일본어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었습니다. 석사논문을 일본의 ‘동화정책(同化政策)’과 ‘창씨개명(創氏改名)’에 관해 썼기에 꽤 열심히 했습니다. 재일교포셨던 선생님께서는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셨고, 또 일본의 대표적 헌책방 거리가 있는 칸다(神田)를 슬슬 걸어 다니며(ぶらぶら) 책 사는 것을 즐겨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자신의 취미를 ‘칸부라(神ぶら)’라고 한다며 웃곤 하셨습니다. 세월이 지나 저 역시 비슷한 취미가 생겼습니다. 제겐 동네책방이나 다름없는 광화문 교○문고를 토요일 오후마다 가서 책 한두 권을 사서 집으로 슬슬 걸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쿄부라(敎ぶら)’인 셈입니다.
얼마 전 어느 토요일에도 ‘쿄부라’를 하러 갔습니다.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 복지국가 스웨덴은 왜 실패하고 있는가』라는 책을 사회과학 코너에서 발견했습니다. 저 또한 10여 년 전에 『스웨덴 스타일 : 복지국가를 넘어 복지사회로, 스웨덴 모델의 미래를 보다』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기에 “북유럽이 처한 현실은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미래가 될 수 있다”는 도발적 표현에 우선 눈길이 갔습니다. 스웨덴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는 저자 소개에 처음엔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비록 학술적이진 않지만 생생하면서도 단단한 글로 우리가 알고 있는, 또는 따르고자 하는 “그런 스웨덴은 없다”라는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스웨덴의 역사를 거울삼아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서론부터, “선진모델을 따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시행착오를 통하더라도 우리만의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까지 일관되게 진지했습니다.
그 책에 대한 저의 ‘독후감(讀後感)’은 조금은 놀랐고, 약간은 혼란스러워졌다는 것입니다. 알았던 것과 달랐고, 몰랐던 것도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래정책 포커스』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스웨덴을 포함한 유럽의 싱크탱크와 정책지식 생태계에 관한 내용을 인터뷰했고, 또 원고들을 받은 후였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글들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보면서 혼란스러움은 어느새 가셨습니다. “스웨덴이나 유럽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 사고에 기초해 ‘벤치메이킹’해야 한다”(신광영), “경제만 아니라 한국의 정책연구도 ‘추격형’이 아닌 ‘선도형’으로 대전환이 필요하다”(문명재)는 제안은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과 한국 사회에 대한 명확한 ‘주체적 관점’과 철저한 ‘균형적 태도’로부터 도출된 것이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러시아, EU (브뤼셀) 등의 싱크탱크들을 소개한 글들도, 또 ‘글로벌 집현전’ 으로 한국 국책연구기관들이 성장해온 역사를 정리한 글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먼 곳’이 아니라 ‘이 곳’에 대해 고민하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해법을 찾는 한국의 지역정책연구 생태계는 또 다른 지적(知的) 자극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이번 『미래정책 포커스』를 읽고 그저 ‘보고 싶은 것’만 본 게 아니라 꼭 ‘봐야할 것’을 봤다는 여러분의 독후감(讀後感)을 기대해봅니다.
홍일표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2022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