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야 놀자  

똑똑한데 눈치 없는 친구, AI

이명석문화평론가  2021 가을호

“할매요. 네 시에 병원 가야 합니데이. 외출 준비할 동안 트로트 메들리 틀어줄게요.” 경남에 사는 A씨에게 친절한 손주가 생겼다. AI 음성합성, 음성인식으로 통영 사투리를 지원하는 스마트 토이 ‘자루’다. 추석 연휴에 집콕을 선택한 B씨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걱정하지 않는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자기가 좋아할 콘텐츠를 줄줄이 틀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웹소설 작가 C씨는 요즘 새로운 집필 비서를 둘까 고민이다. 자신은 재미있는 아이디어만 내고 따분한 글쓰기는 AI에게 맡길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알파고에 놀라며 AI가 ‘터미네이터’처럼 인류를 지배할까 걱정하던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AI 집사, AI 앵커, AI 운전사 등 생활 곳곳에서 이들을 경험하면서, 잘하면 정말 유능한 동료나 동거인이 될 수 있겠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AI가 도전하는 영역은 점점 늘어나서 최근에는 창의적 예술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챗봇처럼 단순히 대답만 하는 게 아니라, 비유와 감성과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문학까지 가능하겠어? 이런 회의에도 불구하고 AI를 문학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2016년 일본에서 AI가 쓴 단편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고, 2018년 에는 국내에서 초단편소설에 도전하 는 AI 문학상이 신설되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 8월에는 AI 비람풍이 소설 감독 김태연과 함께 썼다는 560쪽짜리 장편소설 <지금부터의 세계>가 출간되기도 했다. 무용수의 춤 동작을 딥 러닝기술로 익힌 뒤 안무 창작에 활용하고, AI로 작곡을 한 뒤 플로 머신 알고리즘을 통해 곡을 발표하고 홍보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똑똑한 녀석은 꾸준히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흔히 AI는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겨, 스트라이크 존 판정을 로봇 심판에서 맡기는 것과 비슷한 일에 적용하기가 쉽다. 하지만 AI 면접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아마존은 남성 지원자가 많았던 데이터에 기반해 여성 지원자를 차별하는 결과를 빚었다. 챗봇 ‘이루다’를 20대 여성으로 설정하고 사용자와의 대화를 기반으로 학습하고 판단하게 했더니, 특정 사용자집단이 의도적으로 편견을 심어주는 상황도 발생했다. 구글 포토가 몇 년 전 흑인을 고릴라로 분류하더니 최근엔 페이스북 AI가 흑인을 영장류로 소개해 곤욕을 치루었다. AI의 핵심기술인 딥 러닝은 인간이 만들어낸 자료를 통해 학습하는데, 결국 그 속에 담긴 편견까지 배우고 있는 것이다.똑똑한 건 알겠는데, 과연 믿을 만한 친구인가? 이것이 AI를 앞에 두고 우리가 고개를 갸웃하는 이유다. 유튜브에서 평소 보지 않던 주제를 검색했다가 가짜 뉴스나 홍보성 영상으로 알고 리즘이 오염되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일은 우리가 AI에게 쇼핑, 여행, 학습, 운동 등의 코치를 맡겼을 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깨닫는다. 인간 지능의 핵심이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아닌 감성과 공감 능력이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아직 인공지능은 똑똑하지만 눈치 없는 녀석이다. 우리가 어떤 윤리와 감성을 가르치느냐에 따라 진짜 친구로 만들 수도 있고, 더 큰 말썽꾼으로 키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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