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실과 가상 세계를 매개하는 인터페이스로 메타버스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초월을 의미하는 ‘Meta’와 세계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Metaverse)’는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크래시(Snow Crash)>에서 시청각 출력장치를 사용해 접근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처음 등장했다. 당시에는 이용자가 단순히 콘텐츠를 제공받는 위치에 머무른 반면, 현재의 메타버스 공간에서는 5G 네트워크, 3D 그래픽 기술, VR·AR 기술 등 기반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주체가 양방향 소통하는 등 동시적 상호작용이 가능해졌다. 이로 인해 이용자는 단순히 가상의 행위를 체험하거나 경험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 콘텐츠를 제작·유통하거나 디지털 공간 내 경제활동까지 영위하고 있다. 이른바 ‘프로슈머(prosumer)’로서 지위를 갖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메타버스 모델 제페토와 명품 브랜드 구찌의 협업 프로젝트지식재산권과 관련한 법적 쟁점 대두
메타버스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 창작이 가능한 공간으로 새롭게 부각하면서 기존 법해석과 법이론을 통해 해결하기 어려운 지식재산권 관련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메타버스 환경에서 제기되는 법적 쟁점은 저작물을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가상공간에서 제작한 창작물에 대한 권리 보호와 권리 침해 여부다.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는 여러 창작 툴을 제공함으로써 이용자가 직접 자신만의 2차 창작물을 만들고 판매가 이루어지도록 지원한다. 국내의 대표적 메타버스 모델로 언급되는 제페토를 예로 들면, 이곳에서는 아바타가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제작하는 ‘제페토 스튜디오’나 가상의 장소를 구축할 수 있는 ‘빌드잇’을 제공한다. 여기서 만든 창작물을 과연 현실 세계의 상표, 디자인, 저작권 등으로 보호할 수 있는지 혹은 이러한 창작 행위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침해 주장이 가능한지 등이 문제가 된다.
다음으로는 현실 세계에 있는 건축물이나 공간 등을 가상 세계에 유사하게 구현하고자 할 때 상표, 디자인,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침해 여부를 다툴 수 있다. 국내에서는 골프장 코스를 재현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한 업체에 대해 골프코스의 건축 저작물성을 인정하는 판결로 논란을 불러온 바 있으며, 미국에서는 메타버스 기반의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가 음악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전미음악출판협회(NMPA)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 세계의 저작물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우
저작권 침해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게 될 것이므로 메타버스 환경에서확대·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면책 법리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와 디자인보호법
미국 메타버스 기반의 게임 플랫폼인 로블록스는 음악저작권 침해 문제로 전미음악출판협회와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현행 디자인보호법은 유형의 물품에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물품성’을 요건으로 하는데, 디지털 출력물에 불과한 메타버스 창작물은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래픽디자인은 디자인보호법상 ‘화상디자인’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특허청 디자인 심사 기준에 따르면 화상디자인은 “물품의 액정 화면 등 표시부에 표시되는 도형 등”으로 해석한다. 가령 화면에 표현되는 아바타나 공간디자인 등의 특정 도형이 형태적 관련성을 띠고 일정한 변화가 있다면 이를 동적 디자인으로 등록할 수 있고, 물리적으로 분리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경우 부분 디자인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디스플레이 장치와 독립된 추상적 디자인 자체로서 보호하는 것은 아니므로 결국 물품성이 부정되거나 디스플레이 장치를 변경해 실시하는 등의 우회 행위를 금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10월 6일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페스티벌&블록체인 서울'에서 참가업체 관계자가 VR훈련 시뮬레이터를 시연하고 있는 모습메타버스와 상표법
메타버스 공간에서 각종 인앱 서비스를 통해 창작한 의류, 가방, 장신구 등(이하 ‘의류 등’이라 함)을 상표로 등록할 수 있는지와 타인의 상표권 침해를 인정할 수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상표법 제2조 제1항 제2호에 따르면 상표의 표장은 “기호, 문자, 도형, 소리, 냄새, 입체적 형상, 홀로그램·동작 및 색채 등으로서 그 구성이나 표현 방식에 상관없이 상품의 출처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모든 표지”를 뜻하므로, 메타버스 공간에서도 출처 표시 기능을 지닌 대상은 상표법상 식별표지에 포섭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표출원 시 지정 상품에 속하는 상품류를 지정해야 하는데, 메타버스에서의 의류 등은 실질적으로는 화상 이미지에 해당하므로 의료 등과 같은 기존 분류 체계에 속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오히려 상품 분류 제9류에 해당하는 ‘내려받기 가능한 이미지 파일(downloadable image files)’을 지정 상품으로 지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일 테니 사례별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현실 세계의 브랜드 상표나 디자인을 모방해 메타버스 공간 내 아바타가 사용하는 물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로블록스 이용자는 브랜드 상표권자로부터 허락받지 않은 유사 디지털 상품을 제작·판매하고, ‘로벅스’라는 가상화폐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 경우 상표법상 상품에 대한 침해가 인정되는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판례에 따르면 상표법상 상품은 “그 자체로서 교환가치를 가지고 독립된 상거래 행위의 목적물이 되는 물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와 저작권법
저작권법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상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가상공간의 ‘공중’ 개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아바타 자체가 캐릭터로서 저작물에 해당하는지,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의류 등을 저작권법상 ‘응용미술저작물’로 인정할 수 있는지 등의 해석을 비롯해 배경 저작물 구현 시 저작권 침해 인정 기준과 플랫폼 사업자(저작권법상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면책 법리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미국에서는 ‘포트나이트 게임’에서 아바타가 춤을 추게 하는 이모트 기능 중 일부분이 실연자의 댄스를 모방한 것이어서 퍼블리시티권 침해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퍼블리시티권의 경우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카목에 따른 성과모방행위로 인정되거나 관련 근거 규정이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저작권법 전면 개정안에 포함되므로 향후 적용 가능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 세계의 저작물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의 구성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므로 메타버스 환경에서 확대·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면책 법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저작권법은 파노라마의 자유(제35조), 부수적 이용(제35조의3), 일반 공정이용(제35조의5) 등의 저작권 제한 사유를 일정한 요건하에 인정하고 있으나, 자유 창작이 가능한 디지털 공간에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메타버스 내 지식재산 창출 지원
앞으로 도래할 메타버스 시대에는 어떠한 원칙과 법리를 적용해야 할 것인가? 현재 대부분의 메타버스 사업자는 서비스 약관을 통해 메타버스에서 생성된 창작물의 권리가 원칙적으로 이용자에게 귀속됨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계약 관계상 권리 성립에 대해서만 작용할 뿐이므로 침해 주장과 권리 분쟁에서 종국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특히 그간 지식재산권법의 영역에서는 전통적으로 창작자의 보호 원칙을 확보하는 데 집중해온 경향이 있다. 메타버스의 산업적·경제적 파급력을 감안할 때 합법적으로 구현 가능한 서비스 범주, 사업자의 책임 범위 및 면책 요건 등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해석 기준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선제적 대응을 통해 메타버스 내 활발한 지식재산 창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메타버스 산업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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