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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의 논란, 수능의 개혁

강태중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 2021 가을호

“‘수능’을 손보지 않으면 어떤 교육정책(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수능은 ‘대입’과 다름없는 말이다. 학생이나 학부모나, 교육에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그 결정이 대입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선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수능에 반영되는 것이면 열심히 달려들고, 반영되지 않는 것이면 무시하게 된다. 이런 전략은 학생이나 학부모만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도 공공연히 채택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정책이든 그 취지를 관철시키려면, 취지에 걸맞다고 여겨지는 교육 행위를 수능에 걸어 유도할 도리밖에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래서들 주장한다. 반드시 가르쳐야 할 내용이라면 수능 과목에 포함시켜서 공부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한국사가 수능의 필수 과목이 되고, 최근 ‘AI 과목’을 수능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모두 그런 맥락에서의 일이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50일 앞둔 2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서 수험생들이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수능 논란

왜 모두 수능에 매달리는가? 우리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수능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수능 점수에 걸려 있는 인생의 몫은 어마어마하다. 어떤 대학에 다니게 될지 결정한다는 사실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사람 취급’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을지 마저 결정한다고 얘기된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끼리도 수능 점수로 계급을 나눈다고 한다. 수능 커트라인이 낮았다면, 그 모집단위에 입학한 학우들을 ‘벌레’ 취급한다는(‘지균충’ ‘사배충’ 등으로 부른다는) 얘기는 보도까지 되었다. 어떤 고3 교실에는 ‘수능 점수가 배우자를 결정한다’는 식의 급훈이 걸려있다는 얘기도 있다.
수능의 영향력은 막강하고, 그만큼 수능의 구속은 우리에게 버겁다. 이런 현실에서 수능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안 나올 수 없다. 손봐야 할 이유는 많다. 수능 때문에 피폐해지는 학생들을 거론하고, 수능에 맞춰가지 않을 수 없어서 비틀리는 학교교육도 거론한다. 자녀의 수능 전략을 뒷받침해야 하는 가계의 부담도 수능을 바꾸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된다. ‘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든, ‘가계 부담 완화’를 위해서든, 수능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우리 모두 쉽게 수긍한다.
수능을 개혁하려는 과제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결정하는 대목에서이다. 수능을 바꾸자는 데는 마음을 모으지만, 개혁 대안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뜻을 모으지 못한다. 수능을 개혁하라는 사회의 요구는 종종 모순적이고, 그래서 수능을 개혁하기 위한 논의는 늘 딜레마에 빠지기 마련이다.

수능 논란에 함축된 갈등

2022학년도 9월 수능모의평가가 치러진 한 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수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개혁 요구들이 서로 어떻게 부딪치는지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우선, 수능의 영향력이 너무 크고 부작용도 따라서 막대하니, 수능의 결정력을 약화하거나 아예 없애자는 요구가 있다. 수능을 자격시험으로 바꾸자거나, 수능 성적을 점수가 아닌 등급으로만 표시하자는 주장들도 이런 요구에 해당한다. 이런 주장이 널리 지지 받지만 반박도 만만찮다. 수능 폐지나 약화 시도는 ‘풍선효과’를 낼 뿐이라거나 ‘객관적인’ 선발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반박이 바로 나온다. 수능 점수로 등락을 결정짓지 않으면 최종 결정력이 다른 전형요소로 옮겨갈 뿐이고, 그렇게 결정력을 얻게 될 요소는 학교생활기록과 같이 ‘정성적인’ 것이기 십상이어서, 대입전형이 객관적이지 못하고 ‘외부 요인’에 휘둘릴 여지가 있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이와 연결되는 맥락에서, 수능이 공정하려면 객관적이고 변별력이 강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비슷한 학생들이 경쟁하는 경우에도 동점자가 나오지 않도록 변별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수능의 영역별로 9단계 점수 등급이 정해진 비율로 엄밀하게 나뉘지 않을 경우, 수능 출제에 대한 비난은 매우 거세다. 그래도 이에 대한 반박 역시 만만찮다. 이를테면, 1~2점 차이더라도 수험생들을 변별하려 드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한다. 교육적으로 의미 없는 점수 차이에 연연하도록 수험생들을 옭아매어, 문제풀이 연습을 무한 반복하게 만드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이 다양하고 교육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더이상 옥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공방은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한편에서는 동점자가 안 나올 만큼 서열을 겹치지 않게 매기는 시험이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반대편에서는, 서열이 겹치건 말건(동점자가 얼마나 생기건), 수능은 학교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했는지 평가하는 데만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논란과 갈등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논란에서도 수능이 어떤 궁지에 몰려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소위 “문과가 불리해졌다” 는 주장을 들여다보자. 올해 시행되는 수능에서는 수학 영역의 과목이 통합되었다. 작년까지 ‘가’형과 ‘나’형으로 구분했었는데 그 분리를 없앤 것이다. 작년까지는 소위 ‘이과생’이 가형에 응시했고 ‘문과생’은 나형에 응시했었다. 그래서 수학에 상대적으로 약한 학생(흔히 ‘문과생’으로 간주된다)은 나형을 선택해서, 수학에 강한 학생(흔히 ‘이과생’으로 간주된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2022학년도 수능에서는 이런 우회로가 없어진 셈이다. 모든 수험생이 하나의 풀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문과생 불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과생들이 점수의 상층을 형성하게 될 터라, 밑으로 ‘깔리게’ 될 문과생들이 여러모로 불리해졌다고 주장한다. 문과생들이 수시에서 수능 최저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워졌고, 정시에서는 이과생들이 문과 분야로 ‘교차지원’해서 문과생의 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고도 말한다. 수능이 불공정해졌다고 역설하면서, 제도를 과거로 돌려놓아야 할 것처럼 주장한다. 수능의 표준점수제나 점수 보정이 문제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금년의 수능 체제는 ‘교육의 미래’를 위해 마련되었다. 2015년 교육과정 개정 때, 정책 당국은 미래가 융합적인 사고를 요구하고 통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중시했다. 국가교육과정은 이미 통합적이었는데도 학생들은 여전히 문과-이과로 분리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수능 체제를 바꾸어서 구태를 실질적으로 깨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수능의 ‘개혁’ 이이루어졌지만, 고등학교의 수업 운영은 상응하게 변화하지 않았고, 대학들도 새로운 수능 체제에 조응하는 전형제도를 마련해놓지 않았다. 변혁의 부조화는 결국 ‘문과 불리’라고 일컫는 사태를 낳았고, 이 ‘문제’는 지난 6월 수능 모의평가가 시행된 후에야 실감하게 되었다. 이해당사자들과 언론에서 비로소 소리 높여 대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통합된 수능 체제를 채택한 게 잘못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보더라도, AI 교육이 필요하고 그만큼 수학 교육이 중요해졌다는 주장이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시대 변화를 감안해서 수능이 통합적으로 개혁되었던 것이지만, 득점상의 이해관계가 바뀌자 마치 수능이 그릇된 방향으로 바뀐 것처럼 주장되고있다. 수능 유·불리 논란과 관련해서 이해를 달리하는 주장이 없지 않다. 이번 수능에 와서야 비로소 수학 우수자들의 실력이 바르게 인정받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거에는 우수한 학생들끼리 경쟁하도록 강제되었었기에 실력자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다.

수능을 발전시키려면

수능에 대해서는 이해를 달리하는 요구가 매년 쏟아지게 마련이다. 수능 점수에 대한 ‘배당 몫’이 막대한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제까지 수능 개혁은 그런 요구에 흔들리며 우왕좌왕해왔다. ‘물수능-불수능’, ‘상대평가-절대평가’, ‘수능-학생부’(또는, ‘정시-수시’) 등,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이었던 대입 논란의 용어들이 그동안 수능 개혁이 왜 근본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했는지 보여준다.
수능 개혁은 사회의 요구(여론 또는 민원) 충족보다 교육 앞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우선 추구해야 할 것이다. 수능(대입)이 평생을 좌우할 만큼 막대한 힘을 지니도록 놔두어야 할지, 학교 수업이 수능 문제풀이에 매달려도 괜찮은지 먼저 토의하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대안을 만들고, 개혁에 대한 학교와 대학 등의 조응도 확보해야 비로소 개혁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 최선은 현행 수능의 안정된 운영을 도모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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