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  

휴먼 뉴딜과 평생학습사회 구현

류방란한국교육개발원 원장 2021 가을호

지난해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향한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한국판 뉴딜은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과 함께 안전망 강화를 핵심으로 한다. 디지털 뉴딜이나 안전망 강화 요소였던 신산업인력 양성이나 사람 투자에 대한 것이 부각되면서 이를 휴먼 뉴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국판 뉴딜이 미래를 향한 대전환을 꾀하는 것이라면 휴먼 뉴딜은 다른 뉴딜의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으로, 휴먼 뉴딜이 몇몇 정책에 중점을 두는 것을 넘어 평생학습 체제 구현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발전되기를 바란다.
평생교육이라는 말은 ‘평생’이라는 생애 전반의 기간에만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 학습자 주도성을 기반으로 학습자가 속한 사회의 민주적 역동성을 중시하고, 직업 능력 향상을 통해 자립적인 삶을 돕는 역할을 해온 사회교육에서 발전하여 교육을 보는 관점이나 제도화를 위한 접근 방식을 내포하는 말이기도 하다. 평생교육은 학습자의 자발성과 주도성 존중을 중심으로 유연하고 개방적이며, 상호 연결적인 체제를 지향한다. 또한 아동·청소년기 교육과 마찬가지로 성인기 교육에서도 모든 이의 학습권 보장을 추구한다. 지역을 중심으로 평생학습 프로그램과 활동이 전개되면서 플랫폼을 형성하고, 더 큰 플랫폼과 연계되어 평생학습 플랫폼 방식으로 평생학습 체제가 구축되기를 바란다. 여기에서는 성인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학과를 ‘특정 주제 혹은 목표를 지향하는 학생과 교수 중심으로 조직된 지적 연결 단위’로 규정함으로써 종래 학과와 대학 조직을 재구조화한 대표적 혁신 사례로 꼽히는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평생학습의 장으로서 대학과 직업교육 혁신

대학은 작은 차이를 서열화해 입학생을 선별하는 데 몰두하기보다 학습할 수 있는 사전 역량을 갖추고, 의지가 있는 학습자에게 열린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성인 학습자들이 살아가면서 필요로 하는 교육의 상당 부분은 인프라와 자원을 갖춘 대학에서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대학은 더 깊은 인문·교양을 원하거나 이직 후 전직을 원하는 성인들의 요구에 부응해 다양한 비형식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체제로 거듭나야 한다. 학습자들이 자율적 설계를 통해 여러 대학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학점을 취득하고, 그 성과에 기초해 학위나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 학습활동이 유연하게 이루어지려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단과대학, 학과, 학점, 졸업 등 학사 운영 구조가변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애리조나주립대학교는 학과를 ‘특정 주제 혹은 목표를 지향하는 학생과 교수 중심으로 조직된 지적 연결 단위’로 규정함으로써 종래 학과와 대학 조직을 재구조화한 대표적 혁신 사례로 꼽힌다. 전문대학과 대학은 특히 직업교육 영역에서 혁신이 필요하다. 학습자의 자립적인 삶,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역할은 평생교육의 중요한 축이다. 사회 변화 추세를 보면 전통적인 직업교육과 일반 교육의 경계가 완화되며 상호 융합적 접근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디지털 역량, 데이터 문해력 등이 중시되고 있다. 직업교육 및 훈련은 점차 후기 중등 이후 고등교육 수준의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해 거점이나 지역 수준에서 질 높은 재교육과 향상 교육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을 보면 사립 비중이 절대다수인 전문대학은 전문계고등학교보다 여건이 열악한 곳도 많다.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을 구분하는 데 얽매이지 않고 상당수 전문계고등학교를 마이스터고등학교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전문대학과 결합한 새로운 학제로 만들어 양질의 직업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는 방안, 대학이 기업과 연계해 실습을 활성화하고 일과 학습이 선순환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방안, 기업이 직능교육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하는 방안, 지자체나 민간 직업훈련기관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프로그램 이수를 인정하는 방안 등 혁신적 개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부처 간 연계 통합 조정, 학위 중심성 완화

성인 학습자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국민을 위한 평생학습을 보장하기 위해 재정 지원, 프로그램 제공, 유관 서비스의 복합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부는 직업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고용노동부는 직업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펴고 있는데, 양질의 직업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원하는 학습자의 입장에서 보면 만족할 만한 선택지가 많지 않다. 직업교육과 훈련 체제는 학습자와 노동시장을 연결할 수 있도록 현장 실습의 질 제고와 이론과의 연결성 제고, 학습자의 요구와 산업 수요를 반영한 유연한 대응, 지역 중심의 교육훈련과 사업 요구 간 유기적 연계, 직업교육과 훈련의 공공성 제고가 필요하다. 정책적으로는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물론, 직업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다른 부처들을 아우를 수 있는 상위 조정 체제를 갖추어 부처 간의 연계 및 협력을 강화하고, 통합적 접근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 참여정부 시기에 법제화했으나 정권이 바뀌며 사문화된 인적자원개발기본법을 사회 변화의흐름을 고려해 재편함으로써 조정 체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더 강력하게는 기능 조정이나 통합을 통해서라도 국가 수준과 지역 수준에서 체제 개선이 필요하다. 직업교육과 훈련 체제의 발전과 더불어 학위 중심성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에서 학위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학교를 통해 취득한 학위가 없어도 일을 통해 축적한 역량, 숙련도 등이 노동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일을 통한 학습, 숙련도 향상 의지를 북돋기 어렵다. 많은 선진국에서 학위 이외에 경력을 통해 성취한 숙련도나 자격 수준 향상을 노동시장에서 인정함으로써 학위 중심성을 완화하고, 현장에서의 학습을 고취하고 있다. 일을 통한 학습을 인정해주기 위해서는 학력과 자격이 호환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합의가 가능한 분야와 기능에 대해서라도 먼저 시도해보아야 한다.

학습권 보장을 위한 노동·복지 정책 연계

세계적으로 시행한 국제성인역량조사(Programme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 Competen-cies, PIAAC)나 국내의 평생학습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는 소득, 학력, 재직 직장 규모에 따른 비형식 프로그램 위주의 평생학습 격차가 매우 큰 편이다. 성인 학습자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국민을 위한 평생학습을 보장하기 위해 재정 지원, 프로그램 제공, 유관 서비스의 복합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기본소득의 취지를 학습에 적용한 학습 크레디트와 같은 정책 도입은 미래를 위한 사람 투자로서의 의미가 크다. 싱가포르에서는 이미 이를 시도해본 바 있다. 아울러 새로운 일을 찾는 중장년, 경력 보유 여성들에게 적절한 직업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학업 보조금 지급, 학자금 융자 등의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평생교육법에서 가능성을 열어둔 유급 학습휴가제나 학습 기간 중 대체 고용을 의무화해 주기적으로 재충전과 일자리 공유를 구조화하도록 한다.
학업 중단 후 학습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기초 역량이 부족한 사람, 니트족(NEET,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신조어), 은둔자 등의 재도전을 위해 아웃리치 활동을 강화하고, 이들에게 적합한 학습-문화-복지가 결합한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아동 돌봄, 어르신 돌봄, 개인학습, 학습 공동체 참여, 교육 프로그램 참여 등이 한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서비스 복합센터 등이 그 예다.
이상은 중앙이나 지역 수준에서의 정책 설계를 염두에 두고 제안해보았다. 그러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급자 위주의 정책 입안과 추진에 의해 주어진 프로그램을 학습자가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습자의 자발성과 주도성을 기반으로 하는 평생학습의 영역은 정책만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민간에서의 자발적 움직임, 기업의 풍토 변화 등도 수반되어야 한다.시민들이 생활권 내에서 삶의 문제, 교육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하는 풀뿌리 운동 체계가 만들어지고, 여기에서 논의된 문제의식이 위 단계에 모여 국가 수준에서도 국민의 뜻에 맞는 교육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적 결정을 함께 해내는 과정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여러 정책도 시민사회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며 추진해야 할 것이다.
국제성인역량조사에서 한국 성인들의 문해력, 수리력, 문제해결력은 모두 연령이 증가할수록 우리가 주로 비교 대상으로 삼는 나라들에 비해 매우 가파른 추락 곡선을 보였으며, 상위 수준의 역량을 지닌 성인의 비율도 훨씬 낮았다. 이 결과는 평생학습 참여 기회 확대 요구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한 사회 구성원의 역량은 프로그램화된 학습을 통해서만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성인역량조사 결과를 보면 학습 의지, 과업 재량, 직장 내 학습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떨어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산업구조나 직무 특성에도 기인하겠지만, 직장의 조직문화나 풍토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학습사회는 프로그램화된 학습 방식을 넘어 사회 각 부문의 조직이 더 자율적이고 도전적인 향상 의지를 격려하고 협력하는 풍토를 내재화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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