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99년 연구회 체제”를 넘어 - 독일 싱크탱크의 디지털 전환 ‘아인슈타인 디지털 미래 센터’

전 세계 싱크탱크가 지켜봐야 할 실험

김지우경제·인문사회연구회  연구네트워크부 전문위원 2023 여름호

디지털 전환은 대한민국 정부만이 고민하는 현안이 아니다. 전 세계 수많은 정부와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 및 인프라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자하여 사회의 다양한 요소를 융합하는 혁신 비전을 구상 중이다. 그렇다면 과연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구하고 그 비전을 이행하는 주체는 전통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그 주체 역시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기조로 운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독일 베를린 소재 ‘아인슈타인 디지털 미래 센터(Einstein Center for Digital Future, 이하 ECDF)’는 디지털 전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싱크탱크임과 동시에, 싱크탱크라는 제도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는 실험장이다.

디지털 전환을 연구하는 싱크탱크 프로젝트

지난 5월, 글로벌 싱크탱크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방문한 ECDF

먼저 ECDF의 제도적 혁신을 설명하자면 독일 싱크탱크 제도의 ‘전통 방식’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 11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막스플랑크협회를 필두로 4대 연구협회(막스플랑크, 프라운호퍼, 라이프니츠, 헴홀츠)의 거버넌스 하에 지방정부와 연방정부의 공동출연금으로 운영되는 독일 연구기관들을 ‘전통 싱크탱크’로 볼 수 있다. 독일경제연구소(DIW), 킬 세계경제연구소(Kiel IfW) 등이 이 분류에 포함된다. 이런 측면에서 ECDF는 이 4대 연구협회의 학술생태계를 벗어난 ‘이단’ 개체이다. 일단 독립법인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ECDF는 채용 인력 및 소속 연구자가 없고, 심지어 사무실도 없기 때문에 연구기관으로 칭하는 것도 부정확하다. ECDF는 베를린시 출연 기금으로 운영되는 아인슈타인 재단(Einstein Foundation Berlin)의 5개년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로서 ECDF의 핵심 본질은 디지털 전환 관련 수요와 자원을 융합하는 제도적 장치로 볼 수 있다. 베를린 기술대학교 오데즈 카오 교수의 제안으로 2017년에 베를린시 정부와 아인슈타인 재단은 베를린 시 내 디지털 전환 관련 R&D 생태계 진흥을 위한 민관협력(PPP) 연구비 출연제도를 설계했다. PPP출연제도의 내용은 민간에서 디지털 전환 연구를 위한 예산을 아인슈타인 재단에 출연할 시, 민간출연금의 50%에 상당하는 예산을 베를린시에서 아인슈타인 재단에 추가 출연한다는 매칭펀드의 개념이다. 예를 들면 아마존, 폭스바겐 등의 민간 기업이 디지털 전환 관련 연구의뢰와 함께 아인슈타인 재단에 100유로를 출연하면, 베를린시에서 추가적으로 50유로를 아인슈타인 재단에 출연하는 것이다.

진정한 융합연구를 위한 공유 오피스

아인슈타인 재단은 민간 및 공공의 매칭펀드로 구성된 연구목적 출연금을 베를린 자유대학, 베를린 기술대, 홈볼트 대학 등 베를린 소재 대학에 디지털 전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교수를 채용하도록 인건비로 배분한다. 이 목적출연금으로 채용된 교수들은 소속 대학 교수로서 강의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ECDF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연구 실적을 쌓게 된다.

ECDF 참여 교수들은 소속 대학교에 개별 사무실이 있지만 진정한 융합연구는 물리적 융합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기조에 따라, 베를린시에서 ECDF 프로젝트 지원 차 제공한 청사를 보쉬센터(ECDF-Robert Bosch Center)라고 명명하고 ECDF 전용 공유 오피스로 활용하고 있다. 최소의 관리인력 사무실을 제외하고 오픈 오피스 형태로 운영되는 보쉬센터에서는 프로젝트 참여 교수 간 학술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회의실, 민간 기업에게 프로젝트 구상을 설명할 수 있는 랩(lab), 소수의 인원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연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가로 로비 공간에서는 해커톤(hackathon) 대회, 디지털 전환 관련 교육 등 베를린 시민, 특히 베를린 소재 대학 학부생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종종 운영한다.

학제 간 융합연구를 위한 실험적인 도전

ECDF는 다학제적 연구와 융합학문을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그 예시로 ECDF가 참여하는 디지털 고령화·보건센터(Digital Urban Center for Aging and Health)의 고령 인구 건강 문제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가 있다. 웨어러블 기기의 데이터를 활용하고 AI 분석을 도입하는 방안 등의 솔루션이다. 이를 위해 ECDF의 데이터 과학자와 엔지니어는 베를린 소재 간호사, 간병인, 의사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ECDF의 연구 내용은 민간의 수요에 따라 프로젝트가 설계됨에 따라 디지털 전환 최전선에서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베를린교통공사(BVG)과 함께 진행 중인 AI활용 지속가능 도시모빌리티 플랫폼 연구는 택시, 버스, 지하철뿐만 아니라 공유 자전거, 스쿠터 등 베를린시 내 모든 모빌리티 옵션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 제공을 목표로 한다. 더 나아가 탄소배출량 등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 및 자원효율성도 고려할 수 있게 관련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이렇듯 민간·공공의 매칭펀드로 운영되는 ECDF 프로젝트는 실험적인 도전으로서 설계되었다. 실험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2023년 3월 베를린 상원 교육·연구 상임위원회와 아인슈타인 재단 주관으로 프로젝트 기간종료 평가를 진행하였고 평가 결과를 검토한 베를린시 정부는 ECDF 프로젝트 5년 연장 운영을 승인하였다.

분절된 사회의 각종 데이터와 소통·상호작용 메커니즘을 디지털 공간에 탑재하는 것이 디지털 전환의 핵심이라면, 디지털 전환 관련 연구 역시 연구 분야 간 벽을 허물고 다학제적 전문성을 집결하는 형식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미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독일 학술연구 생태계의 안정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위험하고 도전적인 방식을 선택한 ECDF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싱크탱크 종사자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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