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축소사회’ 대한민국 - 공간으로의 해법

아동 돌봄안전망의 공간화 전략을 통한 저출산 대응

강현미건축공간연구원 주거문화연구단  부연구위원 2023 여름호

전방위적 저출산 대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점점 낮아져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 0.78로 역대 최저를 기록하였다. 그간 출산에 집중해온 단기적·수혜성 저출산 대책을 전 생애주기에 맞춤한 지원으로 전환하고, 국가가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모든 아동이 여건에 맞는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아동기 필수서비스로서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안전망’을 구축하고 수요에 기반하여 사회적 돌봄 제공기관의 공급·운영 방식을 개선하자는 적극적인 정책 제안도 등장하였다.

아동 권리를 보장하는 돌봄안전망

현재 아동 돌봄에 관한 공간 환경 정책은 개별 돌봄시설 확충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지역별 돌봄 수요를 면밀히 고려하기 어려우며 양육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인 돌봄 공백을 유발할 수 있다. 한편 아동의 일과 중 특정 시설과 프로그램의 비중이 과도할 경우, 건강한 성장에 필수적인 경험과 자극의 다양성이 부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초등학생의 방과 후 활동을 분석한 연구 결과, 집 가까이에 각종 생활인프라가 갖춰진 아파트 단지에서는 바깥놀이가 활발한 반면, 놀이장소가 부족하고 보행환경이 열악한 저층 주거지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스마트폰·게임기·TV를 들여다보는 시간(스크린타임)의 비율이 높고 친구와의 놀이 시간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돌봄서비스와 공간이 부족한 지역에서 아동은 학원이나 양육자가 동행하는 장소 또는 집 안에 머무르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기회가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

주거 유형에 좌우되는 기반 시설 수준과 더불어, 보행 환경의 질은 이동 능력이한정적인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이크다. 아동친화적이지 못한 근린 환경이돌봄서비스 부족 문제, 경쟁적인 사회분위기와 결합할 때 아이들은 독립적 이동을 제한받고 구조화된 일정에 갇히며 행복과 멀어지게 된다. 수동적 돌봄 대상이 아니라 권리 주체로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명시한 아동의 기본권(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 간 협력을 바탕으로 아동의 안전과 경험 확장, 사회적 만남을 지원하는 근린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돌봄안전망과 연계한 인프라 개선

심각한 저출산 위기 가운데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키워준다’라는 정책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돌봄 수요를 면밀히 파악하고, 돌봄서비스와 생활환경을 융합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에 근린 단위의 돌봄안전망 공간화 전략으로 부처와 지자체의 분절된 생활인프라관련 정책 사업들을 지역별 돌봄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통합해야 한다. 돌봄기관과 각종 생활인프라 간의 연계성을 높이면서 생활인프라가 돌봄서비스를 나누어 담당하고, 돌봄 수요가 집중되는 곳에는 복합화된 거점시설을 조성하는 방식이 확대되어야 한다. 기존의 생활SOC복합화사업(범부처), 학교시설복합화사업(교육부) 등 검증된 사업 모델에서 출발하되, 시설복합화의 장애 요인으로 꼽히는 예산 집행과 운영관리의 효율성 문제를 해결하도록 사업 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지역의 물리적 환경과 사회경제적 여건에 적합한 시설 확충 전략이 필요하다. 저층 주거지는 기반 시설이 부족하지만, 아동 거주밀도 역시 낮아 돌봄 수요자의 숫자만으로는 신규 시설 공급·운영 기준을 채우기 어렵다. 이 경우, 저층 주거지의 노후화된 공공시설을 리모델링하면서 시설 일부에 모듈화된 돌봄 공간 또는 아동을 위한 생활인프라를 조성하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공공시설 저층부와 외부공간을 적극활용하고, 차량 통행이 많은 주변의 보차혼용도로를 안전한 보행공간으로 정비함으로써 이용자의 시설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세 번째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더욱 주목받은 ‘N분 도시’ 등 시간도시계획(Chrono-Urbanism)의 원칙과 기법을 근린 환경에 적용한다. 돌봄공백을 줄이는 최선의 전략은 양육자의 돌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므로 공간 개선을 통해 양육자의 업무 및 출퇴근 소요 시간을 먼저 줄여야 한다. 최근 한 기업이 ‘원격 근무 공유 오피스’를 곳곳에 마련해 출퇴근 시간을 대폭 줄인 사례를 참고하여 원격 근무를 위한 공간적 지원을 확충하고, 초등학교 방과후돌봄처럼 특정 시설을 시간대별로 공유하는 경우에는 사용 주체 및 프로그램 전환이 용이하도록 공간과 운영관리 방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그림1> 초등학생 포커스그룹 주거유형별 집-여가장소 접근성 차이
자료: 강현미 외(2022)
<그림2> 초등학생 포커스그룹 주거유형별 집-여가장소 접근성 차이
자료: 강현미 외(2022)

아동 눈높이에서 생활환경 만들기

이밖에 아동 권리의 관점에서 생활환경을 진단·평가하는 방법론이 확립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공간 관련 정책 사업에서 접근성 등 수요자 중심의 성과 지표가 강조되는 추세지만, 실제 아동이 체감하는 공간 위계의 계획 요소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이 2015년 ‘도시개발 프로젝트의 통합아동영향분석’을 도입해 도시계획 초기 단계부터 아동의 관점을 반영한 정책 사례를 참고하여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공간 환경 진단 방법론을 개발하고, 이를 현재 아동권리보장원이 시행하는 아동정책영향평가와 결합한다면 생활환경을 보다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동의 눈높이를 고려하는 도시계획 수립 절차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2월 27일 발의)을 통해 생활권계획의 법제화를 추진함에 따라, 일상에 밀착된 공간 계획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지고 있다. 앞서 제안한 아동친화 도시공간 조성의 전략을 실행하는 수단으로 일상생활권 계획을 활용하되 아동과 양육자가 참여하는 상향식·협력적 계획을 통해 아동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기를 기대한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이 기사에 공감하신다면 ‘공감’버튼으로 응원해주세요!

독자 여러분께 더 나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공감’으로 응원하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