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지구를 지켜라! 탄소중립 실현

참여와 합의를 통한 정의로운 탄소중립

임성진2050 탄소중립위원회 공정전환분과  위원장 2021 가을호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과 2050 탄소중립위원회의 활동 내용에 대해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요약하자면 크게 ‘탄소중립에 미흡하다’는 의견과 ‘경제적 현실에 비춰 과하다’는 내용의 상반된 주장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의견 대립은 탈탄소 전환이 사회 모든 영역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할 뿐 아니라 이해당사자 간 입장도서로 다르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그런데 이런 식의 갈등은 다른 기후변화 대응 선진국에서도 드러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탈탄소 전환은 기존의 산업사회 발전 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그로 인해 기존 체제의 위기와 새로운 미래의 기회 창출이 동시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서 우리 관심의 초점은 갈등의 기술적 봉합이 아닌, 변화 과정에서 피해자와 수혜자의 희비가 엇갈리는 현실을 해결하고 모든 참여자가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공정한 참여 구조의 도입에 맞춰야 한다.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에 따르면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 영향, 에너지·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취약 산업·계층·노동· 지역을 보호하고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며, 이를 위해 “불이익을 받거나 소외된 이해관계자가 없도록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촉진”해야 한다. 다시 말해 탈탄소 사회로의 성공적 전환을 위해서는 계층과 직업 그리고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공정하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뜻이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이러한 원칙이 중요한 것은 현재의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는 공정한 전환이 전제되지 않는 한 사회적 합의의 도출과 시민의 참여를 기대하기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거버넌스에 기반한 독일의 탈석탄 과정

과거 탄광이던 독일 루르 지역은 이제 10만 명 이상의 인력이 새로운 미래 산업과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혁신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 방향성을 찾기 위해 독일의 탈석탄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루르 지역은 독일의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해준 에너지와 자원의 보고로, 1950년대 중반만 해도 6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한 해 1억 2,400만 톤에 이르는 석탄을 생산하던 산업 중심지였다. 노조의 힘이 강력한 독일에서 정치적으로도, 특히 사회민주당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지역이기도 하다. 기후변화 대응 선도국으로 불리는 독일의 석탄 발전 폐쇄 시점이 다른 서유럽 국가보다 늦은 2038년으로 결정된 것도 바로 이러한 정치·경제적 배경 때문이다.
본격적인 석유 시대의 도래로 쇠퇴하기 시작한 독일의 석탄산업은 이미 1960년대부터 구조 전환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독일의 탈석탄 정책이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노동계와 산업계, 지역의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1980년대 중반까지는 석탄산업을 유지하면서 일자리 감소와 환경오염 문제에 대응하는 정책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 혁신을 앞세운 독일 정부는 루르 지역의 산업구조를 지식과 미래 산업에 기반한 새로운 발전 양식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탈석탄 재산업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 과정에서 정부는 지방정부, 대학, 주민, 기업, 노동계 등 다양한 행위자들의 참여와 합의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그리고 직업 전환 등을 통해 지역 내 일자리 총수가 줄어들지 않도록 고용정책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정책 덕분에 2007년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석탄산업계는 2018년까지 무연탄 광산을 폐쇄하고, 석탄 보조금을 중지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시민참여를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전환 정책 덕분에 과거 탄광이던 루르 지역은 이제 10만 명 이상의 인력이 모여 새로운 미래산업과 기술 발전을 주도하는 혁신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해마다 국제건축박람회(IBA)가 열려 사람들이 몰려드는 엠셔(Emscher), 루르 지역 혁신도시로 불리는 보트로프(Bottrop), 도르트문트(Dortmund) 동부의 푀닉스 호수(Phoenix Lake) 지역, 오버하우젠(Oberhausen) 프라운호퍼 환경안전에너지기술연구소(Fra unhofer UMSICHT)는 과거 석탄산업으로 오염된 지역이 미래 도시나 연구단지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2018년 6월 연방정부는 지역과 노동자, 산업계, 환경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성장과 구조 전환, 고용을 위한 위원회(Commission on Growth, Structural Change and Empl -oyment)’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적 거버넌스 체제를 통해 마침내 2019년 1월에 독일의 탈석탄 정책이 최종 합의되었다

체계적 거시 정책과 합의 체제 필요

독일의 탈석탄 정책은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독일의 탈석탄 에너지 전환은 몇 년 안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60년에 걸친 장기적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이를 교훈 삼아 한국은 탄소중립에 주어진 기간 동안독일보다 더 일관되고 체계적인 정책을 강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독일도 그랬듯 새로운 전환은 이익과 피해를 동시에 발생시키며, 필연적으로 갈등과 저항을 수반한다는 사실이다. 독일 사회는 이러한 문제를 다양한 행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체제를 통해 해결했다. 우리 정부와 이해관계자들 역시 합의에 기초한 정의로운 전환은 입장 차를 극복하고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임을 명심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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