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를 비롯해 전문가, 산업계, 시민 단체,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탄소중립 논의가 한창이다. 이른바 탄소중립 기본법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정부는 부처별로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마련 중이다. 국민적 이해와 탄소중립 문화 정착을 위한 생활 실천 안내서도 발간하고 있다. 탄소중립위원회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안이 발표되면서 현재 공론화가 진행 중이기도 하다. 한편 산업계에서는 ESG(Environment, Society, Governance)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으로 구성된 수소 기업 협의체도 곧 출범할 예정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지역사회 갈등도 이슈가 되고 있다. 경제계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명시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ationally De termined Contributions, NDCs)를 달성하는 것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에선 어려운 일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좀 더 현실성 있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맞는 담대한 탄소중립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견제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탄소중립의 목적은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의 미래성장동력을 마련하는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기회는 극대화하고 위기는 잘 관리하는 현명하고 차분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를 비롯해 국가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대전환적 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근본적 해결책을차분히 모색하는 일과 관련 현안의 물꼬를 트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축적해나가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전환의 구현 가능성 확보
지난 8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안(대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기본적으로 정책·기술·산업·사회 혁신이 필요하다. 대전환의 목적은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혁신에도 단계가 있다. 핌 마르턴스(Pim Martens)와 얀 로트만스(Jan Rotmans)의 전환 이론에 따르면 전환은 S자 커브의 네 단계(사전 준비, 출발, 가속, 안정화)로 진행된다. 사전 준비와 출발을 넘어 가속화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우리의 고민이 필요하다.
탄소중립을 위한 요체는 에너지전환이다. 에너지전환이란 에너지 시스템을 구성하는 물리적·기술적 요소, 시장과 제도, 사회문화 및 행태의 공진화(Coevolution)를 통해 3D(Decarbonization, Decentraliz ation, Digitalization)를 추진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에너지전환의 구현 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수십 년 동안 에너지 부문의 경쟁 체제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새롭게 밀어닥친 시대전환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고를 단기간에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에너지 시장 제도 및 기술 체제를 방치한 채 정부 주도의 연료 믹스 조정과 기술개발 계획만으로는 탄소중립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에너지전환 및 탄소중립 시대와 동떨어진 20세기형 전력시장과 가스 시장의 거버넌스 개편이 불가피하다. 과거 시장 운영 능력 부족이 부족했던 데다, 연탄가스 사고와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한 국가 독점적 전력 및 가스 시장의 거래 규칙은 혁신되어야 한다. 에너지전환은 기술적·제도적 경로 의존성을 탈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우월한 신재생에너지 대안이 등장하더라도 막대한 전환비용 부담과 기존 기술의 거래 관행으로 인해 기술전환은 연착륙하기 어렵다. 따라서 전환기 잠재적 우위를 지닌 신기술이 안착할 수 있도록 기존 기술에 대한 경로 의존성의 고착화를 예방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나 민간의 실천 프로그램 필요
탄소중립을 구현하기 위한 과제는 산적해 있다. 탄소중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현안도 해결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중요하다. 따라서 제도· 기술·시장·사회 혁신에 기반해 정부 및 민간에서 실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성공 사례를 하나하나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 다. 시범 사업이나, 작지만 신뢰를 증진하주는 제도를 이행하는 것도 좋다. 정의로운 탄소중립, 지역발전 등 단기적으로 실천하고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정부는 물론 각계각층에서 아이디어를 모아야 하겠다.
정책공동체 이론으로 저명한 휴 헤클로(Hugh Heclo)는 하나의 정부 의사결정이나 행위라기보다는 일련의 결과 과정으로 정책을 정의한다. 이해관계 집단이 증가하고 사회가 고도로 다원화되면서 사회 네트워크적 접근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21세기 정부의 역할이란 정부 주도적 개념이 아니라 정부·시장·국민 간 역할을 시스템적으로 균형 있게 잘 배분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리드하고 정책을 실천해야만 국민 참여와 공감대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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