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칼럼
범정권·범부처 국가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들이 대두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언택트 문화, 지구온난화,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시대적 정책과제(historical agenda)들이다.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미중 양극체제 공고화, 북한 핵무장,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약육강식의 국제질서 재편의 지구적 정책과제가 내정에 스며들고 있다. 장기간 풀지 못한 민감한 정책과제들도 정권을 넘나들며 누적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지방 소멸, 지역·빈부·노사·이념 갈등에 이어 남녀 갈등까지 고르디우스 매듭으로 묶여가고 있다. 이렇게 단임 대통령은 새 과제는 미루고, 헌 과제는 땜질만 하면서 회피한다. 5년마다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의 어깨는 무겁지만, 그건 다만 잠시일 뿐이다. 근본적 해결을 미루는 사이 5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난맥상이다. 과거가 그랬듯, 현재도 그렇고 미래도 또 그럴 것이다. 예측불허의 미래는 그야말로 에머리와 트리스트가 말하는 ‘소용돌이의 마당(Turbulence Field)’을 넘어 ‘쓰나미의 해변(Tsunami Beach)’으로 바뀌고 있다. 길게 100년, 짧게는 10년 후, 대한민국은 과연 어떻게 될까? 장밋빛이 아니라 잿빛이 될까 걱정된다. 국가의 정책생산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4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출산정책에서 배워야
1960년 출생아는 108만 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갑작스러운 다산 현상에 깜짝 놀란 정부는 이듬해 ‘대한가족계획협회’를 만든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 주요 시책으로 가족계획을 포함시킨다. 아이 덜 낳게 하겠다고 피임제 무료 배포, 피임 전문 의사 양성, 콘돔 자동 판매기 설치, 피임 시술 기관 지정 등 출산 감소정책을 편다. 40년간 외쳐온 저출산정책은 1999년 대한가족계획협회를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로 바꾸면서 정반대로 돌아선다. 고출산정책으로의 급선회다. 2005년에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되고, 2009년에는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도 만든다. 인공임신중절 금지와 미혼모 지원 대책도 세운다. 방송은 연일 ‘아이 낳고 싶은 대한민국’ 특집을 내보낸다. 드디어 2021년에는 ‘초저출생 시대’라는 말이등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출생아 수가 40년 전의5분의 1인 26만 명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100년 전(1925년)에도 56만여 명이 태어났고, 전쟁 중에도 60만여 명 선이 유지되었다. 100년 후(2117년)에는 서울 강남, 부산 강서, 광주 광산을 비롯한 8개 지역을 제외한 전국 221개 시군구 모두 인구가 소멸되어 전국 도시가 사라진다는 끔찍한 예측이다. 장기적 국가과제인 인구정책 문제가 이렇게 근시안적으로 관리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초보적 시계열통계로도 추산 가능한 인구문제를 5년 임기의 정권이 서로 주고받으며 방치해온 결과다. 정권 변동과 무관하게 외길을 걸어온 연구자들이 백년대계의 일관된 인구정책을 연구했다면 어땠을까? 오로지 시대적·지구적·누적적 정책과제만 연구하는 인프라 구축이 요구되는 이유다. 한마디로 국가정책 싱크탱크의 역할 변화가 절실하다.
거시적·통합적·장기적 국가 비전 수립의 범정권·범부처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오로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정권과 무관하게 묵묵히 미래를그려내는 국가 싱크탱크다.
헌법에 충실하면서 정권과 부처로부터 자유로운 국가 싱크탱크
1971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설립되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본관 1층 로비에 ‘번영을 향한 경제 설계’라는 휘호를 써준다. 설립 자금으로 사재 100만 원도 쾌척한다. 원장은 수시로 독대한다. 대단한 KDI 사랑이었다. 당시 국가 목표는 경제발전이었고, 50년 후를 대비한 전 분야 총괄 국가 싱크탱크로 KDI를 만들었다. 미래 국가 로드맵을 그려내라고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경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전 분야의 다양한 정책문제를 다루었다. 설립 목적처럼 경제사회 현상에 대한 ‘종합적 연구기관’이었다. 경제·문화·노동·복지·교육·재벌정책까지 전방위적 정책과제를 맡았다. 지난 50여 년간 KDI는 명실상부한 거시적 총괄 국가 싱크탱크였다. 그것이 지금은 경제정책만의 싱크탱크다. 물론 조세·대외경제·노동·복지· 교육 등 부처별 싱크탱크로 쪼개진 탓이긴 하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종전의 KDI 역할을 맡을 국가 싱크탱크를 만들어야 한다.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국가 싱크탱크 말이다. 거시적·통합적·장기적 국가 비전 수립의 범정권· 범부처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정권의 입맛에 맞추는 마우스탱크(mouth tank, 말잔치탱크)나 팅클탱크(tinkle tank, 딸랑이탱크), 부처의 시녀 싱크탱크가 아닌 오로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정권과 무관하게 묵묵히 미래를 그려내는 국가 싱크탱크다. 방식은 현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조직인 ‘국가전략연구센터’ 를 확대하거나, 별도로 만들거나, KDI를 재지정할 수도 있다. 국가미래연구원이든 국가전략연구원이든 명칭이 무슨 상관이랴! 대통령 직속이 아니라 동격으로 대통령 교체와 무관한 독립적 국가 싱크탱크가 절박하다. 장시간 고심한 싱크탱크 연구자만의 공허한 제언이 아니길 희망한다.
황윤원중원대학교 총장
2022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