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연구회 체제가 출범한 지 25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 5월부터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5주년 회고와 전망』 집필을 위한 연구팀을 꾸려 오면서, 우리 사회에서 왜 연구회 체제가 출범했고 이후로 어떤 쟁점이 출현했으며 그 조직 안팎에서 궁구해온 정체성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를 휘감고 있는 독립성, 자율성, 중립성, 평가체계, 미래전략, 협동연구 등의 개념이 지시하는 범위, 그리고 의미하는 지평이 무엇인지에 관해 고민을 거듭해왔다. 연구팀은 마치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듯한,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전모와 윤곽을 어떻게 하면 잘 파악하여 드러낼 수 있을지를 두고 수시로 모여 토론했다. 그 결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IMF 경제위기 속에서 구조조정의 압박을 받으며 대단히 수동적이고 방편적으로 출범하기는 했지만, 25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장기전략적인 국가정책지식의 생산이라는 본연의 책무에 부응하며 비로소 제 꼴과 제자리를 찾아온 기구였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대전환기 과제와 국가정책 지식의 생산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저출생·고령화, 지역 간 불균형, 기후위기, AI 빅뱅, 북핵 문제와 에너지 안보 등 이른바 ‘대전환기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문제화하며 또 대응해갈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인데, 이것은 위로부터의 일사불란한 지시나 한두 곳 연구소의 제안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매우 복잡해졌고 이해관계가 다양해졌으며, 사회문제도 보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형태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책지식에 대한 수요 역시 공적 가치에 기반한 장기적 시간성, 전략적 기획성, 그리고 사회적 신뢰 구조의 형성을 요청하고 있다. 이때 국가의 정책지식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 소비되며 그것이 가져온 효과는 무엇인지는 국가로서도 사회로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여러 어려움과 부침이 있었지만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걸어갈 길은 이 문제의 궤적 위에 놓여 있다고 할 것이다.
연구회의 출범과 국가 싱크탱크의 모색
돌이켜보면 1999년에 출범한 경제사회연구회와 인문사회연구회는 「정부출연기관법」에 근거한 사업에 집중하다가 제각기 중장기 발전 계획을 세우고 소관 연구기관들의 협동연구를 중심으로 연구회 체제를 정착시켰다. 이 두 기구는 2005년에 통합되어 경제·인문사회연구회로 재출범했고 이후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연구기관의 관리에 머물지 않고 인문사회 분야를 대표하는 국가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끊임없는 구조조정 요구, 「공공기관운영법」의 규제, 정부 부처와 정치권력의 간섭 등 연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부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연구기관이 정부 부처 산하였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연구회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아울러 정책역량도 커진 시대였다.
국가 싱크탱크로서의 정체성 강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현행 체제는 2010년대의 여러 연구프로그램을 통해 안착되었다. 이 시기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국가-시민사회-학술장으로부터의 다양한 요청 속에서 협동연구와 인문정책연구라는 양대 연구프로그램 체제를 정착시켰다. 전체적으로 보면 연구회 통합(2005년) 이전 시기에는 ‘핵심 정체성의 확립을 통해 옥상옥이라는 인식을 타파’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고 통합 이후에는 ‘연구기관의 지원 및 육성을 통해 미래전략 기능을 강화’하고, 마지막으로 세종시로 이전(2014년)한 이후의 시기에는 ‘관리 차원을 넘어 더 넓은 연구 생태계를 고려한 정책연구의 허브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협동연구에서 아래로부터의 의제 설정 방향성을 보다 확대하고 인문정책 연구의 방향성을 장기적 관점에서 정립하며 정책연구 생태계를 강화하는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과제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여전히 남겨진 숙제이다.
관민(官民)을 넘어 공사(公私)로
그동안 전략적 국가 싱크탱크로 도약하고자 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구상과 비전은 여러 법적, 제도적, 인식론적 제약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1990년대 이래 제출된 연구기관 개혁 담론은 현재까지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정체성을 근거 짓는 동시에 제한하는 요인이 되어왔다. 그것은 ① 정부 부처로부터의 독립, ② 민영화 프레임, ③ 장기적 전략연구의 추구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대단히 아쉬운 점은 일련의 개혁 논의가 종종 관과 민의 이분법(‘구조조정과 민영화’) 일변도로 진행되고 그 틀로 환원되곤 했다는 점이다. 이런 속에서 정작 중요한 연구회의 공적 책무, 연구의 공적 가치가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외면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앞으로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우리 사회에서 대전환기 정책지식의 생산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드리워진 관의 그늘을 걷어내고 공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발굴해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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