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위한 제언  

불확정성을 끌어안는 조직 만들기, 디지털 대전환기의 리더십

박태웅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 2022 봄호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것은 2007년이다. 한국에 상륙한 것은 그보다 2년 뒤인 2009년 겨울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필름카메라를 절멸시켰던 디지털카메라는 곧이어 나타난 기술 혁신의 제물이 됐다. 개인용 녹음기도, 릴테이프와 CD플레이어를 없앴던 MP3 플레이어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해마다 혁신 리포트를 내는 매킨지는 2021년 보고서에서 향후 10년간 일어날 기술적 진보가 불러올 변화가 지난 100년간 일어난 그것보다 더 클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겪은 변화보다도 더 큰 변화가 온다고?
‘불확정성’의 시대다. 지금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든, 어떤 선행학습을 하든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평생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어떤 것을 가지고 먹고살게 될 것이다. 페이스북도, 구글도, 애플도 3년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오직 불확정성만이 유일하게 확정적인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다.

‘업무 지시가 없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일하는 법

구글과 페이스북, 넷플릭스에는 ‘업무 지시’가 없다. 경영진은 조직 전체의 비전과 목표만 알려준다. 조직원은 무슨 일을 할 건지 스스로 정한다.

실험하라!

구글이든 페이스북이든 누구나 일정 규모 이하, 예를 들어 전체 고객의 0.01%(페이스북의 등록 회원은 27억명이 넘는다!)의 고객을 상대로 한 실험은 어떤 보고나 결재 없이 바로 시도해볼 수 있다. 말하자면 소규모의 타깃 고객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진행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실험 계획을 정리해 사내 게시판에 올리고 함께 할 동료를 구한다. 가설과 실험 방법, 기대하는 결과를 정리한 리포트다. 계획서뿐 아니라 작성자의 프로필까지 함께 볼 수 있다. 그가 짠 코드는 사내의 코드 저장소에 있다. 그가 한 일은 사내 게시판에 있다. 실력이 있고 프로젝트 성공 경험이 많다면 지원자가 많을 것이다. 올린 사람 역시 지원자를 평가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팀이 만들어지면 이 팀은 이미 이 실험에 대해 이해가 깊은 상태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팀이 소규모 타깃고객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면 자연스럽게 A/B 테스트가 된다. 결과를 기존 서비스와 바로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낳으면, 다시 그 규모를 확대할 수 있다. 이때도 어떤 보고나 결재도 필요 없다. 타겟 고객을 달리하고, 서로 다른 코호트 집단에 실험을 적용해보면서 유효성을 검증해나가다가 성공이라는 판단이 들면 그때 실험을 전체 서비스에 적용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이미 전투에 이긴 다음에 전쟁을 하러 나가는 것이다.

대부분 실패한다

사실 이런 실험은 대부분 실패한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다져가면서 만들어온 서비스라 개선하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를 들어 0.1%가 성공을 했다고 해보자. 전체 개발자 2만 명(실은 훨씬 더 많다)이 한 달에 하나 정도의 실험을 하고 그중 0.1%가 성공하면 한 달에 20건의 성공한 변화가 서비스에 적용된다. 1년이면 240건의 서비스가 개선되거나 새로운 서비스가 탄생하는 셈이다.

제대로 된 인프라를 제공한다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대로 된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사내의 모든 문서는 모두 위키로만 공유하고, 위키는 특별한 제한이 없는 한 사내의 모든 임직원이 볼 수 있다. 위키는 웹에서 여러 명이 함께 문서 편집을 하고 공유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협업 게시판이라고 볼 수 있다.
고객 데이터베이스는 분할 실험을 할 수 있게 잘 준비돼 있다. 언제든 원하는 코호트의 고객만을 대상으로 새로운 실험을 해볼 수 있다. 실험할 때마다 개발자들이 데이터베이스에서 타깃고객을 일일이 분리해야 한다면 실험은 한없이 지연될 것이다. 단계별 론칭 도구, 실험을 돌리는 레이어, 실험 데이터를 볼 수 있는 도구들이 잘 개발된 시스템으로 제공된다. 제품, 유엑스, 프라이버시, 보안, 접근과 같이 리뷰를 위한 리소스가 있다. 개발자, 제품 책임자, 디자이너,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등 협업을 해줄 동료들이 있고 실험의 전 과정에서 토론해 더 나은 실험이 될 수 있게 해준다.

비전을 공유한다

누구의 결재나 승인도 없이 실험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비전의 공유다. 적어도 이 배가 어디로 가는 건지는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구글과 페이스북에는 매주 ‘올핸즈 미팅’이 있다. 구글의 경우 매주 목요일에 전사 미팅을 하고 CEO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이 나서서 회사의 경영 내용이나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도 매주 전사 미팅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나아갈 방향, 즉 비전에 관해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업데이트한다. 세세한 일에 대해 업무 지시를 하지 않는 대신 매주 전사 미팅과 토론을 통해 비전을 공유하는 것, 이것이 어떤 승인도 없이 각자가 자유로이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 실험들이 페이스북과 구글을 세계 최고의 자리로 이끌고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불확정성을 포용한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이런 자유로운 조직 운용은 기실 누구도 다음 변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시대에 대한 나름의 대안이다.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수만 개의 촉수를 만들어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짚어보자는 것이다. 수만 명의 개발자들이 제각기 자유로운 뉴런의 결합처럼 집단지성을 구성해 더듬이를 펼치는 것이다.

하나의 실패가 19,999개의 실패를 막는다

실패는 압도적으로 중요한 자산이 된다. 모든 실패는 포스트모템을 거친다. 왜 실패했는지, 애초에 실험을 하게 된 전제는 뭐였는지, 어디서 전제가 틀린 것인지를 낱낱이 기록해 위키에 남긴다. 이렇게 해서 실패는 그 자체로 고객과 시장에 대한 더없이 귀중한 데이터가 되고, 다른 실험을 위한 중요한 힌트가 되어준다. 한 명의 실패가 나머지 19,999명의 실패를 막아주는 것이다.

‘협업하자’고 말하는 대신 협업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협업은 구호로 되는 게 아니다. 회식을 하고, 분기마다 MT를 가고, 주기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들어서 되는 일도 아니다. 페이스북과 구글의 협업은 위키를 쓰면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이슈 트래킹 툴을 함께 쓰고, 협업하는 문화를 만듦으로써 가능해졌다. 비전을 공유하고 사람 수만큼의 실험을 허용함으로써 스스로 동의하는 실험에 손을 들어 참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뤄졌다.
불확정성의 시대다. 누구도 3년 뒤 무슨 일이 생길지 말하지 못한다. 조직원 모두가 촉수가 되어 경우의 수를 모두 더듬게 하고 자유로운 뉴런이 되어 자유결합하게 할 수 있다면 불확정성을 끌어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산업사회의 하이어라키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상명하복의 경직을 그대로 둔 채 디지털 대전환기를 맞을 순 없다. 낮게 달린 열매는 더 이상 없다. 혼돈에는 혼돈으로 맞서야 한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이 기사에 공감하신다면 ‘공감’버튼으로 응원해주세요!

독자 여러분께 더 나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공감’으로 응원하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