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2   도전과 응전 속 연구회 체제의 발전

연구회의 불편하고 멀지만 가야만 할 길

소진광가천대학교 명예교수, 前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 2022 봄호

당위와 현실 간 균형을 찾아

2012년 9월 5일(수) 열린 세종국책연구단지 기공식

필자는 2012년 8월 20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하 연구회) 이사로 임명되어 2018년 11월 30일까지 활동했으니 6년 3월 11일 동안 이사직을 수행한 셈이다. 연구회 정관은 임원의 임기를 3년으로 규정해 필자의 이사직은 2015년 8월로 끝날 예정이었으나 당시 이사장께서 총리실과 협의하고 다시 선임 절차를 거쳐 임명받았다. 처음 이사가 되었을 당시엔 이명박 대통령 시절이었고, 박근혜 대통령 시절을 거쳐 퇴임할 때는 문재인 대통령 시절이었다. 3대의 대통령 시대를 겪으면서 연구회 이사를 하다 보니 연구회와 국책연구기관의 소임과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에 큰 변화가 있었음을 느낀다.
연구회는 「정부 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연구회는 당연히 국가 재정지원을 받고 국가가 필요한 연구 사업 정책의 지원과 지식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회와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존재 이유와 존재 방식은 종종 가치판단의 대상이다. 연구회는 필요한 기구로서의 당위적 경로, 즉 ‘멀지만 가야 할 길’과 조직 운영과 관련해 ‘ 불편한 길 혹은 한계’를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연구회는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과의 관계에서 다양한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회의 권한과 책임은 종종 외부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조직이나 공동체는 ‘같은 것은 같게, 서로 다른 것은 다르게 관리’됨으로써 개별 특수성과 공동체의 보편성을 살릴 수 있다. 연구회가 소관 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도 이와 같다. 다만 개별적으로 다를지라도 소관 연구기관끼리 ‘국가정책연구’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과 조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연구회는 보충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멀지만 가야 할 길: 연구회의 당위적 경로

연구회는 두 가지 커다란 설립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소관 연구기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연구회가 가야 할 길은 멀기도 하고 험난하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연구 활동에 대한 감독관청이나 국회 및 언론의 이해가종종 연구회나 연구기관의 관점과 다르다. 연구기관끼리 협업이 필요하거나 같은 국책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연구 생태계와 연구 역량이 서로 달라서 이를 조화롭고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은 연구회가 수행해야 할 보충적 임무다.
필자가 이사로 임명되어 처음으로 이사회에 참석한 것은 2012년 9월 7일 오후 3시였다. 당시 연구회는 양재역 근처 외교센터 3층과 4, 5층의 회의실을 빌려 쓰고 있었다. 이때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은 연구기관 평가 결과에 대한 보고와 심의 안건으로 연구기관 지방 이전과 관련한 사항, 이미 선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과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의 경영 목표(안), 그리고 소관 연구기관의 해외 사무소 2011년도 실적에 대한 2012년도 평가 결과가 있었다.
연구회는 매년 각 연구기관의 다음 연도 예산을 승인한다. 필자가 이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때에는 연구기관마다정부출연금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차이를 보였다. 정부출연금 비중이 낮은 연구기관은 수탁 과제를 통해 경상비와 인건비 일부를 충당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출연금 비중이 낮은 연구기관들은 수탁 과제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서 이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연구회는 각 연구기관의 수탁 과제를 관리하기 위해 과거 3년간의 수탁 과제 실적을 가중 평균해 다음 연도 예산 편성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즉 가중치는 전년도 수탁 과제 실적을 50%, 전전연도 실적을 30%, 그 이전 연도 실적을 20%씩 배분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 3년간의 가중평균은 정부마다 달라지는 정책의 변경 추세를 반영하지 못해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정부출연금 상향과 맞물려 풀어나가야 할 과제였다.
또한 연구회는 연구기관의 지방 이전과 맞물려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들 연구기관 종사자들은 공공 분야에 근무하면서도 공무원이 누리는 연금, 공제회 가입 등 각종 혜택을 받지 못했고 지방 근무를 꺼렸다. 이에 연구회는 우수 인력 확보 방안 일환으로 관련 부처와 연구기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제회 설립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입장 차이가 커서 결실을 보지 못했다. 또한 연구기관 종사자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연구 인력의 특성을 무시하고 연구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와 같이 소관 연구기관의 특수성을 챙기고, 국가정책연구라는 공통분모를 정의하고 관리하는 연구회 임무는 외생변수로 인해 험난하고 제약이 많았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었다.

연구회는 두 가지 커다란 설립 목적을지니고 있다. 하나는 소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는 일이고,다른 하나는 소관 연구기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위해 연구회가 가야 할 길은 멀기도 하고험난하기도 하다.

불편한 길: 연구회 역할의 한계

연구회가 소관 연구기관들의 활동을 일정 ‘틀’에 맞춰 거르고 평가하는 작업이 가끔은 불필요한 간섭으로 비치는 경우가 있다. 평가는 단순히 과거의 성과를 가늠하는 것만이 아니라 바람직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자칫 평가가 연구 활동을 규제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돼서는 곤란한 이유다. 그러나 조건이 같지 않은 연구기관을 같은 잣대와 방식으로 마름질하기란 적절치 못하고 미래 방향도 제시하지 못한다. 연구회가 이사회 분과위원회와 기획평가위원회를 통해 매년 평가지표와 평가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평가 제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평가 결과에 대한 오해도 많았다. 어떤 언론은 2015년도 연구기관 평가 결과를 놓고 ‘국책연구기관 4곳 중 1곳이 낙제점을 받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26개 정부출연연구기관 가운데 ‘매우 미흡(E등급)’과 ‘미흡(D등급)’ 평가를 받은 6개 연구기관을 ‘60점 이하의 낙제점 연구기관’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는 연구회가 26개 연구기관 평가 결과를 상대분포로 분류한 것을 대학교에서의 절대학교점(즉 점수제) 기준과 동일시한 데에서 비롯된 보도였지만 이러한 오해의 파장은 컸다. 이사회는 각 연구기관의 예·결산 및 사업계획을 승인한다. 이러한 연구회 임무는 연구회와 연구기관 사이의 긴장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 연구기관의 관심은 정부출연금을 많이 받는 것인데, 연구회가 이와 관련해 모든 소관 연구기관을 대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연구기관들은 각자 특수한 경우를 내세워 예산편성 당국이나 국회와 직접 접촉하고 정부출연금 증액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기관들은 연구회 위상과 역할에 대해 불만 혹은 회의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는 정부의 예산편성권, 국회의 예산심의권 등과 맞물려 연구회 역할의 한계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한 연구회는 정부 시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 시책으로 모든 공직자를 대상으로 임금피크제, 시간선택제(유연근무제)가 시행된 것도 필자가 연구회 이사로 활동하던 시기다. 연구회도 이러한 정부 시책에 따라 2015년 하반기 임금피크제를 모든 연구기관에 적용하도록 했으나 연구기관 종사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2016년 1월 11일 제211차 이사회는 연구회 및 연구기관 종사자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침(안)을 다루었다. 그러나 유연근무제는 연구활동 특성상 활성화되지 못했다.
연구기관의 회계와 사업 집행 과정 모두를 연구회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연구회는 소관 연구기관의 비상임 감사를 선임해 배정한다. 그러나 비상임 감사가 해당 연구기관의 회계와 사무를 일일이 감사하기도 어렵다. 필자는 2012년 연말부터 연구회에 각 연구기관 비상임 감사 수당을 현실화할 것을 건의했고, 2013년 4월 26일 제149차 이사회에서 연구회 및 연구기관 비상임 감사 제도 개선 방안이 보고되었다. 2013년 8월 2일 제157차 이사회에서는 연구회 및 연구기관 비상임 감사제도 개선안 조치 결과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연구회와 연구기관의 긴장은 평가 과정에서 높게 나타난다. 특히 연구기관 보고서의 연구 윤리는 심각하게 다루어졌다. 물론 연구기관의 연구보고서에 요구되는 연구 윤리는 학술지 게재 논문과는 다른 점이 인정된다. 2015년 3월 6일 제188차 이사회는 연구보고서 연구 윤리 평가규정을 개정한 바 있다. 임금피크제, 유연근무제 등 각종 정부 시책을 연구기관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연구기관은 연구회가 연구 활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부 방침만 따르려 한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연구회가 국무총리 산하기관으로서 지닌 한계가 소관 연구기관과의 불편한 관계로 표출된 셈이다.

기사는 어떠셨나요?
이 기사에 공감하신다면 ‘공감’버튼으로 응원해주세요!

독자 여러분께 더 나은 읽을거리를 제공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공감’으로 응원하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