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경계를 넘어   ① - 2023년도 제5차 인문관통

물, 왜 인문학이어야 하는가?

최종수LH 토지주택연구원 건설안전연구실  연구위원 2023 가을호

상선약수(上善若水). 고전이나 동양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듯한 문구다. 어려운 한자가 없어 해석도 비교적 쉽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그런데 이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선약수가 언급된 『도덕경』 제8장의 원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上善若水(상선약수) /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이만물이부쟁) /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 모두가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故幾於道(고기어도) / 그래서 도에 가깝다.

상선약수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가장 좋은 것은 물처럼 행동하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물은 남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르고 만물에 생명을 부여하지만 다투지 않는 것을 그 이유로 꼽았다. 물은 노자를 비롯한 여러 철학가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했고 자기 생각을 비유하는 대상이 되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

과거 선문답의 대상이었던 물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과학의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H2O의 화학식을 비롯해 물이 증발해서 비가 되는 물의 순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물에 관한 지식을 과학 시간에 배웠다. 학교를 졸업하면 물에 관한 관심도 멀어질 듯하지만, 오히려 물은 일상에서 우리에게 더 가까워진 느낌을 받는다. 먹는 수돗물 문제부터 장마철마다 연례행사처럼 겪는 홍수가 그렇다. 일상에서 접하는 물에 관한 문제는 복잡한 화학식도 어려운 계산식도 없어 과학 시간 시험문제보다 훨씬 간단해 보이지만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일정 분야의 기술이 발달하면 전문가 간 이견이 줄어들고 기술에 대한 사용자 신뢰는 높아진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자동차나 스마트폰 기술처럼 말이다. 물에 관한 기술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물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는 높아지고 전문가 간 이견은 줄어들고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접하는 물에 관한 문제를 둘러볼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물 문제에는 수돗물 수질, 4대강 녹조, 홍수 등이 있다. 관련 기술 발달로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오히려 심해지는 양상이다. 국민 여론은 양분되어 있고 전문가 의견도 엇갈린다. 4대강 보가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4대강 녹조에 대한 논쟁은 보가 축조된 지 1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홍수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논의도 상황은 비슷하다. 최근 물 문제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도 더해졌다. 기존에 받은 문제도 미처 풀지 못했는데 더 어려운 문제가 또 주어진 셈이다.

같은 사건, 다른 시선

과학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공학 분야에서는 같은 분석 결과를 두고 극단으로 상반되는 해석을 내놓는 경우는 흔치 않다. 수치가 많은 것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역사와 철학의 인문학 분야에서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같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릴 수 있다. 우리는 물에 대한 지식을 과학의 영역으로 배웠지만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이런 사회현상에 비춰보면 물은 어쩌면 공학이 아닌 인문학의 영역일지도 모를 일이다.

물을 비롯한 환경에 관한 문제는 일상, 특히 건강과 직접 관련된 경우가 많다. 이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고 경계하고 부정하는 인식이 주를 이루게 된다. 이런 이유로 환경에 대한 이슈는 사실보다는 정서에 뿌리를 두고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이슈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려는 특정 집단의 이념과 정치적 계산이 더해지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념과 정치는 반대편이 있기 마련이다. 이념과 정치철학을 달리하는 집단 간 갈등으로 이어지고 대중매체를 통해 양분된 여론을 형성한다.

일반 국민은 여론을 통해 해당 이슈를 접한다. 접하는 정보는 이미 대중매체를 통해 재단되고 가공된 형태이기 때문에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이슈에 대한 평가 또한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정서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수돗물의 수질 문제도, 4대강의 녹조 문제도, 홍수 문제도 형태는 과학과 논리의 틀을 갖추고 있지만 그 내면은 정서에 기반하고 있다. 정치적 관점과 해석에 따라 이슈의 사실 여부는 결여되고 정보는 과장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실재하는 위험보다 국민이 인식하는 위험은 더 커진다.

패널토론

물 문제, 인문학으로 시작해야

우리는 물을 과학의 영역으로 알고 있어 물에 대한 문제도 과학으로 접근하고 기술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양분된 논리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 과학적 접근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못한다. 주장의 뿌리가 사실보다는 정서에 있는 경우가 많고 건강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불안감으로 시작된 이슈를 과학과 기술로 풀려는 접근은 인문학 문제를 계산기로 풀려는 것과 같다.

물에 관한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기술 발달로 많은 문제가 해결됐지만 기술은 국민이 느끼는 막연한 불안감을 달래주지 못한다. 불안감은 기술이 아닌 정서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법 또한 과학과 기술이 아닌 정서에서 출발해야 한다. 물로 야기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한 이유이다. 역지사지라는 다소 진부한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상대방 입장과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추이다.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인문학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물이 최고의 선이라고 했던 상선약수의 의미가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문다는 뜻임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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