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디지털 기술의 도입과 확산 특히 플랫폼 경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생성형 인공지능의 적용 등이 삶과 일하는 방식, 그리고 일자리를 바꾸고 있다. 그 변화가 어디에 얼마나 미칠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20~40대 인력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고령자 비중이 크게 증가하여 노인부양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는 원·하청 간 격차, 정규·비정규직 간, 남녀 간의 심각한 구조적 격차와 플랫폼 노동, 특수고용직, 초단시간 고용의 증가로 분절구조가 더욱 복잡하고, 다층화되고 있다. 지역에서는 경제·교육·문화적 격차로 인해 수도권 집중이 심화하면서 점진적 ‘지역고사’나 ‘지역소멸’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처한 국내외 전환적 환경변화, 사회경제적 격차구조의 심화, 복잡화에 따른 새로운 도전을 맞아서 국책연구기관들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연구과제를 안게 되었다. 과거와는 달리 융합적인 지식과 학제적 연구가 점점 더 요구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이 직면한 도전적 과제
현재 국책연구기관들은 이런 도전적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체제나 준비가 되어 있는가? 국책연구기관은 학술연구를 지향하는 대학과 달리 정책연구와 제도연구 등을 꾸준히 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연구기관마다 일정한 정책연구 경험을 축적하고, 국가 연구개발의 핵심적인 축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관련 분야별로 전문성을 갖고 각 분야의 대학교수, 전문가의 연구네트워크에 중심이 되어왔다. 그러나 국책연구원은 연구기획, 연구방향, 정책 과제에 관한 융합적 해법 마련 등에서 연구네트워크의 중심이 되어 이를 이끌어나가야 할 안목과 지적 역량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역할을 하기 어렵다.
국책연구원들은 매년 국내외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신규 연구인력을 뽑아서 일정한 훈련과 연구경험을 거쳐서 정책연구자로 키워왔다. 그러나 좋은 학술논문을 썼거나 쓰는 우수한 연구인력들은 몇 년의 국책연구원 경력을 거쳐서 서울 등 대도시의 사립대학이나 국립대학으로 옮겨간다. 때로는 국책연구기관이 정거장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국내대학들의 정년이 65세인 데 비해 국책연구원의 정년은 60세(일부는 61세)이며, 정년 이후 2년간의 계속 고용을 하는 경우에도 63세면 연구원을 떠나야 한다. 더구나 대학이 지급하는 좋은 연금에 비해, 정년 이후 국민연금을 받는 국책연구원 연구진의 연금 수준은 그 격차가 매우 크다. 이런 점에서 국책연구원이 우수한 연구인력을 붙잡아둘 유인이 부족하여 대학에 연구 역량과 경험이 풍부한 인력을 빼앗기고 있다.
우수 연구인력을 위해 연구환경 개선해야
시대 전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수한 연구인력을 끌어들이고 일단 채용된 연구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책연구원들이 좋은 연구 분위기와 조건, 공정하고 우수한 연구를 높게 평가하는 제도 아래에서 일할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연구환경 조성과 사기 제고, 연구과제 관리와 연구보고서 우수성 평가 등을 강화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박사급 연구자들이 국내외 연구를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상호 새로운 방법론을 소개하는 등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국내외 세미나 개최와 학술대회 발표 독려, 연구결과 상호발표와 코멘트 등의 연구 분위기를 살리는 일도 중요하다. 연구보고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 과제 수를 여러 개 수행하여 성과를 내는 방식보다는 과제 수를 일정 수 이하로 제한하되 우수한 보고서에 더욱 점수를 높여주는 방식으로 평가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각 부처에서 각 연구기관에 발주하는 정책 과제 수가 많고 이를 상당 부분 수행해주기를 기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시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으나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이 협조하여 해결할 문제이다.
우수한 연구자들을 선발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처우를 개선하여 대학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연구 능력이 우수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63세 이후에도 퇴직 후 계약직으로 고용연장을 하는 방식과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방식을 결합하거나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과학기술계 연구기관들이 시도하는 바와 같이 공제회 등을 만들어 국민연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노후보장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국책연구원들이 박사 연구자들의 연봉제를 도입했으나 여전히 연공적 임금체계가 연봉제 속에 남아 있다. 국책연구원의 젊은 박사들이 일부 선임연구위원들이 연구는 제대로 하지 않고 높은 연봉을 받는 점을 훨씬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연공적 임금체계의 연구경험과 정책지식의 축적을 인정하는 좋은 점을 살리되 연공이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성과제도를 적절하게 결합하여 임금체계를 짤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나친 개인별 성과주의는 정책연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협동연구를 어렵게 하고 연구자들의 상호협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운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
퇴직연구자들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
박사급 연구자들이 국책연구원에서 쌓은 많은 정책연구경험들이 퇴직과 함께 사장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책연구원에서 퇴직한 박사 인력들 가운데 연구 능력과 의지가 있는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국책연구원의 현직 박사들을 도와 연구에 공동연구자로 참여하거나, 대학에서 겸임교수나 강사로 대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있다. 또한 퇴직연구자들이 개별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연구소를 만들어 중소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연구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도 있다. 퇴직연구자들 가운데 전자의 역할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으나 후자의 역할을 하는 분들은 매우 적은 것 같다. 아직은 퇴직연구자들이 많지 않으나 향후에 퇴직자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연구와 활동영역을 개척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퇴직연구자들이 생산적인 연구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그리고 국책연구기관들이 도와야 한다.
퇴직연구자들이 모범적인 연구와 활동을 보일 때 후배 연구자들도 대학교수들에 견줄 수 있는 연구자로서의 생애 경로를 그리면서 미리 걱정을 덜고 현재 국책연구원에서의 연구 활동에 더욱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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