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경계를 넘어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의 독특한 결합

김용수한림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2022 가을호

NRC-KAIST 공동 심포지움(2022년도 제3차 인문관통)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와 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센터의 공동주관으로, 9월 21일(수) 세종국책연구단지 1층 대강당에서 ‘융합학문의 정착과 제도화’를 주제로 개최하였다. 이번 심포지움의 주제발표 중 하나인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 심포지움 전체 내용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홈페이지에서확인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인문학은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인문학 연구와 교육에 적용하여 인문학을 심화·발전시키고, 인문학적 지식과 성찰을 디지털 기술에 제공하여 그것에 기반을 둔 문명의 바람직한 발전에 기여하려는 신생 학문이다. 인문전산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2000년대 들어 크게 주목을 받으며 지금까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사실 디지털 기술이 인문적 가치와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긴요할 뿐만 아니라 결국 기술의 목적은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인문학은 너무 오랫동안 과학기술의 반대편에 서서 그 발전을 애써 외면하며 고유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사이에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영역과 사회적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대학교육의 혁신, 디지털 인문학

디지털 인문학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이것이 인문학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직감했다. 디지털 기술이 제공하는 다양한 방법론이 인문학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어서 인문학의 중흥을 이끌 것이라는 희망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대학교육에 가져올 혁신이었다. 인문사회계 학생들은 대체로 과학기술과 컴퓨터 공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디지털 기술을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스스로를 ‘컴맹’으로 규정하며 ‘문송’의 허상에 짓눌려 좌절하기도 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체계적인 디지털 인문학 교육 과정을 제공한다면 이들은 인문학 특유의 상상력과 의사소통능력에 더해 탁월한 디지털 기술 활용 능력까지 갖춘 인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술의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디지털 문명의 주인공이 될 터이다. 이는 컴퓨터 공학 계열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전공에 전념하다 보면 자칫 기술 습득과 개발에 매몰되기 십상인데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의 독특한 결합은 이들이 기술 발전의 돌파구를 여는 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인간적 가치와 사회 혁신 정신을 겸비한 디지털 인재가 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더구나 디지털 인문학은 일반 대학생들이 기본적인 디지털 리터러시 능력을 갖추는 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희망을 품고 필자는 디지털 인문학을 대학교육에 적용할 방안을 모색했다. 한림대학교는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해 2017년부터 전교생의 복수전공 이수를 의무화하는 제도를 시행했고, 디지털 인문학 대학교육 과정을 ‘디지털인문예술전공’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했다. 전공의 이름에는 디지털 기술과 인문학, 그리고 디자인의 화학적 결합을 담아냈다. 디지털 인문학에 디자인은 자연스럽게 녹아 있지만 이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예술’을 포함하였다. 모든 새로운 시도가 그렇듯이 진행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에 봉착했다. 하지만 신설 전공의 신선한 에너지와 교수, 학생의 엄청난 열정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지금까지 성장해왔다. 신입생 정원이 없이 복수전공생이 참여하는 전공이라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지만 이는 오히려 다양한 전공의 학생이 참여하면서 주전공의 전문 지식과 디지털 인문학의 방법론이 결합하는 효과를 낳았으며, 특히 이질적인 분야의 학생들 간 창의적 협업이 일어나게 하는 긍정적 측면을 지녔다. 교육 방식에 있어서도 디지털 기술을 우선시하며 시험 대신 프로젝트와 실습 중심으로 진행하여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한림대학교 디지털인문예술전공 웹사이트 ‘프로젝트 전시회’ 페이지

디지털인문예술전공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전공 출범 이후 5년이 지난 2022년 현재 한림대학교 디지털인문예술전공은 15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하고 매년 20여 개 이상의 과목이 개설되는 어엿한 전공으로 성장했다. 문화예술디자인, 인문데이터시각화, 디지털 내러티브, 인공지능 인문학, 지역문화콘텐츠 등 5개 트랙을 갖추고 있으며 총 40개의 교과목으로 구성된 전공 과정을 마련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과목의 성격에 맞는 프로젝트를 학기 내내 수행하며 이를 수업의 최종 성과물로 제출한다. 학기말 프로젝트 전시회를 통해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공들여 진행한 프로젝트를 세상에 내어놓는 성취감을 맛보고, 다른 학생과 수업의 프로젝트를 감상하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자극을 얻는다. 무엇보다 전시회는 학생들의 성과가 수업과 전공 안에 머물지 않고, 학내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개됨으로써 이들의 성취가 대외적으로 인정되고 확산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한다. 전시회는 웹사이트로 제작되어 전시회 기간이 끝난 뒤에도 학생들의 성과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아카이브 역할을 수행한다.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프로젝트 전시회는 전공 웹사이트(https://sites.google.com/view/dah-hally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인문예술전공은 여전히 신생 전공으로 부족한 점도 많다.먼저 학생 대부분이 문과 계열 학생으로 이과 계열 학생들의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처음 전공을 출범시킬 때 디지털 인문학이 인문사회계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공계열 학생들에게도 크게 도움이 되리라는 희망을 품었고, 공동 작업을 통해 시너지 효과가 나리라 기대했지만 아직은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이 점은 기술이 사람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분야인 사회혁신디자인을 강화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전공 내에 ‘UX 디자인’이라는 나노 디그리를 신설하여 올해 2학기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나노 디그리는 해당 분야 과목을 9~12학점 이수하면 인증해주는 제도이다. 앞으로 AI 디자인, 디지털 인문학, 문화콘텐츠 등의 나노 디그리를 신설하여 더 많은 학생들에게 다가갈 계획이다.
또한 다른 대학과의 연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상호 학점 인정, 공동 교과목 운영, 공동 프로젝트 전시회 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더 풍부한 기회를 제공하고, 장기적으로는 대학 간 네트워크형 전공을 운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개별 대학의 디지털 인문학 자원은 풍부하지 않다. 네트워크형 디지털 인문학 전공 운영은 전국 대학에 흩어져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연결하여 전국의 학생들에게 디지털 인문학 교육 과정을 제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제도가 될 것이다. 디지털 인문학은 또한 일반 시민 대상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에도 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원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