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야 놀자  

하늘이 다시 열리면 우리의 여행은?

이명석문화평론가  2021 겨울호

드디어 떠난다.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 여행안전권역)’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하늘길이 다시 열리고 있다. 답답한 마음을 일거에 털어버리기 위해 보복적인 여행 소비를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다. 연말연시 특수, 연차를 모아둔 직장인, 겨울방학에 들어간 대학생들을 바라보며 여행업계는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때문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지만, 새로운 방식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봐도 된다.
사람 없는 곳으로 간다. 지난 2년간 여행 트렌드의 가장 큰 변화는 여기에 있다.
<바퀴 달린 집>, <나는 차였어> 등 캠핑과 차박을 테마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레드벨벳 아이린 등 유튜브 콘텐츠로 차박 여행을 보여주는 연예인도 적지 않다. 북적이는 관광지나 비싼 호텔이 아니라 자연 속으로 들어가 조용히 ‘불멍’을 하고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즐기다 오는 것이다. 요트 여행이나 작은 섬의 낚시 여행도 이와 비슷한 마음을 담고 있다.처음에는 항공 여행이 어렵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캠핑 도구를 장만하고 차박의 노하우를 익히면서 이런 여행을 긴 동반자로 삼아도 좋겠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늘길이 열리면 그랜드캐니언이나 캐나다로 장거리 캠핑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도 있다. 서핑, 클라이밍, 산악자전거 등 아웃도어 스포츠를 결합하는 시도도 이어질 것이다.
가볍게 떠나 여유롭게 쉬다 온다. 멀고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작은 로컬을 찾아가는 여행은 꾸준히 사랑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사람들은 허겁지겁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뻔한 일정을 소화하는 일에 지겨워졌다. 부티크 호텔이나 예쁜 민박에 머무르며 작은 공연을 보고, 원데이 클래스를 듣는 식으로 자신의 취향을 극대화한다. 식물 카페를 겸한 펜션, 호젓한 산책로를 갖춘 템플스테이, 미술관이 인접한 호텔 등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시각적으로는 예뻐야 한다. SNS나 유튜브 브이로그가 모두의 여행 숙제가 되어 있기 때문인다.
재택근무 역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 상황이 지나더라도 이를 기본으로 삼으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프리랜서는 물론 직장인도 워케이션(work+vacation), 일과 휴가를 병행하는 방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행지에서 장기 투숙하며 업무를 진행하고, 퇴근 후엔 곧바로 여행자의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고성, 통영 등은 ‘한 달살이’ 식으로 이런 생활을 체험하는 코스를 제안하고 있는데, 인구가 줄어드는 지역에서 새롭게 주민들을 끌어들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움츠림이 길었던 만큼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왜 우리가 이런 일을 겪었는지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는 때이기도 하다. 최근 유럽여행위원회(ETC)는 ‘지속가능 관광’을 테마로 핸드북을 발간했다. 이동 수단의 탄소 배출량 감소, 숙박업계의 일회용품 제한, 효과적인 물관리 등 환경을 깊이 고려한 여행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라는 거다.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 여행 등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방법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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