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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세 합의안의 내용과 시사점

예상준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2021 겨울호

2021년 10월 말 개최된 G20 정상회담에서 세계의 정상들은 OECD와 G20가 주도하는 ‘포괄적 체계(Inclusive Framework)’ 로부터 도출한 ‘디지털세 합의안’을 이행하는 데에 공식적으로 동의했다. 포괄적 체계에 참여하는 141개국 중 137개국이 동의한 디지털세 합의안은 ‘경제의 디지털화로부터 발생하는 조세 문제를 다루기 위한 두 가지 방안’을 일컫는데, 다국적기업의 소득에 대한 기존 과세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어 현행 국제 조세 체계에 대한 개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경제의 디지털화로부터 발생하는 조세 문제란 무엇이며, 디지털세 합의안이 제시하는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글로벌 대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방안에 합의했다고 2021년 10월 9일 발표했다. 마티아스 코먼 OECD 사무총장(오른쪽)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10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각료이사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에서의 과세권 배분

현재 다국적기업의 소득에 대한 과세는 다국적기업의 외국 법인이 소득의 원천지 국가에 있는 고정사업장에서 발생시킨 소득에 대해 해당 국가의 조세 당국이 과세권을 갖는다는 원칙 아래 이루어진다. 여기서 고정사업장이란 본질적인 사업 활동을 영위하는 건물이나 시설, 장치 등의 고정된 장소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A국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기업이 B국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B국 내에 공장을 운영하는 법인을 세워 상품을 생산하고 이를 판매한다고 가정해보자. 다국적기업의 해외 법인은 B국 내 고정사업장을 통해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므로, B국에 세금을 납부할 의무를 갖게 된다. 그런데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경우, 한 국가의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반드시 그 나라에 고정사업장을 설립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영화와 드라마 콘텐츠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서비스하는 A국 기업이 있다고 할 때, 이 기업은 B국에 직접 진출하지 않고도 다른 국가에 설립한 서버(고정사업장)를 통해 B국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때 만약 A국 기업이 B국 근처에 있는 저세율국인 C국에 서버를 두고 B국의 고객에게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B국이 아닌 C국이 C국 내 서버로부터 발생한 소득에 대한 과세권을 갖게 되는데, 그 결과 다국적기업은 B국과 C국의 법인세액의 차이만큼 조세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국적기업이 늘어나면서 이처럼 시장이 소재한 국가에 고정사업장을 설립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로 세원을 이동시켜 조세를 회피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대응해 등장한 디지털세 합의안의 첫 번째 방안인 필라 1은 고정사업장이 존재하지 않는 시장에서 발생하는 이윤에 대해 시장이 소재한 국가가 일정량의 과세권을 갖는 새로운 시스템을 제시한다. 필라 1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다국적기업의 글로벌 이익 중 매출액의 10%를 초과하는 부분을 초과이익으로 정의한 뒤, 초과이익의 4분의 1을 배분량 A(Amount A)라 명명된 과세대상소득으로 구분하고, 이렇게 구분된 소득에 대한 과세권을 적절한 요건을 만족하는 국가들에 일정 공식에 따라 나누어준다는 것이다. 이때 과세권을 배분받는 국가는 적용 대상 다국적기업(연간 매출액이 200억 유로 이상이면서 이익률이 10%를 초과하는 기업)이 100만 유로 이상의 매출을 발생시키는 국가여야 하며(저소득국가의 경우 25만 유로), 배분받는 과세대상소득의 크기를 정하는 공식은 해당 국가의 매출 크기에 비례하도록 정해지게 된다. 이 같은 방식으로 과세권을 배분하는 경우 고정사업장이 없는국가에서도 자국 시장에서 발생한 다국적기업의 매출을 근거로 기업의 소득 일부에 대한 과세권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로 인한 세원 잠식 문제를 다소 해결할 수 있다. 또한 공급망의 효율성과 무관하게 조세회피 목적으로 저세율국으로 이전된 투자가 글로벌 단위에서 재배분되면서 효율적인 생산 자원의 분배가 이루어질 가능성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경제의 발전과 함께 다국적기업의생산에서 국가 간 이동이 쉬운 무형자산을 통한 가치 창출의 비중이 높아지고, 시장에서 적정한 거래가격을 산출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서비스가 늘어나면서, 다국적기업의국제거래를 통한 조세회피 문제는 과거보다 더욱 심화되었다.

국제거래와 글로벌 최저한세

고정사업장과 관련된 문제 이외에 경제의 디지털화로부터 발생하는 조세문제는 다국적기업의 국제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조세회피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저세율국인 C국과 고세율국인 D국에 각각 해외 법인을 둔 다국적기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D국에서 발생시킨 소득에 대한 법인세 부담을줄이기 위해 D국의 법인은 C국 법인과의 거래를 통해 인위적으로 비용을 부풀려 과세대상 소득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100만 유로의 이익을 발생시킨 D국의 법인이 생산 과정에서 C국의 법인이 갖고 있는 특허를 사용하고 로열티를 지불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만약 D국의 법인이 C국 법인 특허의 실제 가치에 해당하는 가격인 50만 유로가 아닌 과도하게 책정된 가격인 90만 유로를 비용으로 지불한다면, D국 법인의 과세대상소득은 50만 유로가 아닌 10만 유로로 축소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래 가격 조작을 통해 해당 다국적기업은 40만 유로의 이익에 D국과 C국간 법인세율 차이를 곱한 만큼의 세액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의 거래가 조세회피 도구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C국 법인과 D국 법인이 거래할 때 거래 가격이 적정 수준으로 정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OECD는 국제거래에서 사용되는 가격이 시장에서 제3자와 거래할 때 가격과 같은 수준이어야 한다는 취지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의 발전과 함께 다국적기업의 생산에서 국가간 이동이 쉬운 무형자산을 통한 가치 창출의 비중이 높아지고, 시장에서 적정한 거래 가격을 산출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다국적기업의 국제거래를 통한 조세회피 문제는 과거보다 더욱 심화되었다.게다가 각국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경쟁적으로 인하하기 시작하면서 세원 잠식으로 인한 세수 축소는 국제사회에서 점차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었다. 국제거래에서 나타나는 조세회피 문제와 과도한 법인세 인하 경쟁의 폐해를 막기 위해, 디지털세 합의안의 두 번째 방안인 필라 2는 글로벌 최저한세율이라는 강력한 시스템을 해결책으로서 제시한다. 글로벌 최저한세율은 다국적기업 내 모든 법인이 조세 관할에서 부담하는 실효법인세율을 적어도 15% 이상 끌어올릴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으로, 조세회피 행위의 근본적 원인이 되는 국가 간 법인세율 차이를 실질적으로 축소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필라 2의 골자라 할 수 있는 GloBE 규칙은, 저세율국 내 법인 소득에 실효세율 15% 미만의 법인세가 부과되는 경우, 15%와 실효세율의 차이만큼 걷지 못한 세금을 해당 법인을 소유한 다국적기업의 본사(또는 상위 모기업)가 부담하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필라 2는 연간 매출액이 7억 5,000만 유로를 넘는 다국적기업에 적용되므로 필라 1보다 더욱 많은 수의 기업이 이에 해당된다. 또한 필라 2의 성격을 고려할 때, 필라 2 도입 이후 다국적기업의 조세부담이 현재보다 늘어나게 될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필라 2는 국가 간 과세권을 재분배하는 필라 1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업의 조세부담을 크게 증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 경우, 다국적기업의 신규 투자 및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여력이 감소하여 글로벌 투자가 둔화될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거대한 재정을 투입한 여러 국가에서 세수 확보의 필요가 더욱 커지면서, 필라 2 도입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서는 우려보다는 기대가 커지는 상황이다.

디지털세 합의안 이행과 미래를 위한 준비

포괄적 체계에서 합의된 대로 2023년부터 디지털세 합의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 현재 논의 중인 디지털세 합의안의 세부 사항이 결정되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각국의 국내 세법과 조세조약의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별히 그 과정 가운데 우리나라는 조세 확실성을 제고하기 위한 명확한 지침 마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 한편으로 고민해봐야 할 것은 디지털세 합의안이 실현된 이후의 세계이다. 새로운 국제 조세 체계하에서 다국적기업의 투자와 공급망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그리고 각국의 법인세율과 투자 인센티브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그 영향을 미리 가늠하고 대비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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