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2   “99년 연구회 체제”의 성립

과학기술계 연구회의 출범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 2021 겨울호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

정부가 1999년 부처별로 나뉜 연구기관들을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이관함에 따라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 3개의 연구회가 탄생했다. 이들 연구회는 공통적으로 ‘연구 및 발전 방향 기획’, ‘기능 조정’, ‘기관 평가’, ‘협동연구 지원’이라는 4대 사업을 추진하고, 소관 기관 지원·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해나가기 시작했다.

1999년 3월 열린 제1차 정기이사회

연구회별 중장기 계획 수립

연구회 제도의 출범은 출연(연)에 대한 정부부처의 경영 간섭을 줄여 연구와 경영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함으로써 실질적인 독립성을 어느 정도 부여하겠다는 정책의 실행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목표와 달리 각 출연(연)은 연구회 체제 출범 이후에도 ‘PBS(Project Based System, 연구과제 중심 운영제도)’ 등으로 실질적 자율성에 한계가 있었다. 또한 연구회 제도가 진일보한 운영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예산권과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3개 연구회는 2002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각 연구회별로 중장기 계획 수립과 경영 목표를 정립하고, 연구회의 주요 사업 목표인 ① 정책·기획 기능의 강화를 통한 소관 연구기관의 특성화 유도 ② 탁월한 연구 업적 창출을 위한 기관 경영 지원과 성과 보상 ③ 연구원의 사기 진작을 위한 정책대안의 발굴·시행 등 목표 달성을 위한 현안 해결에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기초기술연구회의 경우 2002년까지 소관 연구기관을 ‘세계적 원천기술 연구기관으로 육성한다’는 기본 목표를 설정하고 산학연전문가로 구성된 ‘미래기술포럼’을 운영하여 소관 연구기관별 특성에 맞는 기능 정립 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을 경주했다. 산업기술연구회는 설립 직후인 1999년 8월에 ‘Vision 2000 및 경영 목표’를 설정하여 ‘지식산업 R&D 기반 구축을 위한 산업기술 비전 2000’ 을 수립하고 산학연 간의 협동연구 비율을 확대시켜나갔다. 또한 공공기술연구회는 설립 해인 1999년과 2000년도에 연구회 기능 중 하나인 연구기관 간 기능 조정 및 해산을 추진하여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슈퍼컴퓨팅 기능을 연구개발정보센터로, 한국기계연구원의 해양선박공학시스템 기능을 한국해양연구원으로 이관하는 등 출연(연)의 전문화를 추진했다. 연구회는 또한 출연(연)의 연구자율성 및 책임경영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연구기관장에게 조직·인사·급여·예산집행권 등 자율권을 대폭 이양하고, 연구 실적과 경영 성과의 평가를 통한 목표관리 체제를 도입했다. 협동연구는 초기에는 기관별 지분 구조를 갖춘 정책연구 사업 형태로 시작되었으나 점점 실질적인 협동연구 사업으로 발전했다.

국무총리실에서 과학기술부로 이관

이후 참여정부가 2004년 ‘과학기술 중심 사회 구축’과 국가혁신체계 재정비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과학기술행정체제를 개편하며, 3개 과학기술계 연구회와 소관 19개 출연(연)은 국무총리실에서 과학기술부로 이관되었다. 이러한 구조변화는 출연(연)의 역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인풋 중심의 R&D 정책에서 아웃풋 중심의 R&D 정책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이후 3개 연구회를 중심으로 핵심 연구 분야를 발굴·기획하여 연구 역량을 결집할 수 있도록 Top Brand Project를 발굴·추진하고, 성과 중심의 연구 관리 체제로의 변화, 그 외에도 연구회별 임무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에 따른 차별적 육성·지원 정책을 추진하는 계기가 되었다.연구회 체제가 시작되고 이후 10년 동안 출연(연)의 정규직 인력은 평균 1.3배, 연구 예산은 2.6배, 논문 수는 1.5배 이상 성장하고, 국가 과학기술 역량도 선진국을 따라가던 추격형 수준을 넘어 창의적인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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