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2   “99년 연구회 체제”의 성립

자율적·중립적 연구 위한 기반 닦다

<인터뷰> 이석희초대 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 2021 겨울호

1999년 사회과학 부문에서 2개 연구회(경제사회연구회, 인문사회연구회)가 설립되었다. 초기 연구회의 운영과 성과는 어떠했을까? 그 답을 얻기 위해 이석희 인문사회연구회 초대 사무국장과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석희 인문사회연구회 초대 사무국장은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 연구회 운영을 열정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초기 기반을 닦는 데 기여했다. 이석희 초대 사무국장은 자율성 강화, 협동연구 정착, 인센티브 부여를 위한 평가제도 실시 등을 당시 운영 의의로 꼽으며, 향후 인문학 진흥을 위한 정책연구 기반을 확대해나갈 것을 희망했다.

김영진 인문사회연구회 초대 이사장

Q초대 인문사회연구회 사무국장을 역임하셨는데, 일하신 기간이 궁금합니다.

A인문사회연구회는 1999년 3월 15일 발족했는데, 저는 3월 16일부터 사무국장을 맡아 2005년 6월 말까지 약 7년간 근무했습니다. 초대 김영진 이사장님, 2대 김인수 이사장님, 3대 최송화 이사장님을 모셨습니다. 김인수 이사장님은 2002년 3월부터 재직하셨는데 그해 12월 불의의 사고로 별세하시어 2002년 4월 1일 3대 최송화 이사장님이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2005년 7월 1일 인문사회연구회와 경제사회연구회가 통합하여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발족하기 전까지 재직했습니다.

Q당시 사무국장의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A사무국장의 주된 역할은 사무처 2개 팀(연구기획팀, 평가팀)의 업무 지휘와 사무처 관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회의 간사로서 이사회 개최 시 회의 진행 지원, 기획평가위원회와 경영협의회 지원, 협동연구 및 경영평가 지원 등을 수행했습니다.

Q당시 인문사회연구회의 조직 구성과 부서별 역할·기능은 어떠했습니까?

A연구회 조직은 이사장, 감사(비상임), 사무국(2개 팀)으로 편제되었고, 인원은 이사장, 사무국 직원 9명, 기사 등 총 11명이었습니다. 연구회는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의 지시를 받고 정부출연금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리고 기획평가위원회, 원장경영협의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가 있었습니다. 자문기구인 기획평가위원회는 9개 소관 연구기관의 연구와 경영을 자문해줄 각계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되었고, 경영협의회는 소관 9개 연구기관의 원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소관 연구기관은 통일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법제연구원, 한국여성개발원, 한국청소년개발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교육개발원 등입니다. 인문정책특별위원회는 인문학 진흥을 위한 정책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2000년 설립되었고, 인문학 분야의 위원장 및 위원 9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Q인문사회연구회의 주된 임무는 무엇이었습니까?

A당시 인문사회연구회의 임무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첫째, 연구 기획 및 연구기관의 발전 방향 기획입니다. 각 연구기관의 중장기 발전 방향을 정립할 때 연구기획위원회가 각 연구기관의 연구와 발전 방향의 기획을 지원하고 자문했습니다.
둘째, 연구기관의 기능 조정 및 정비입니다. 연구기관의 신설·통합 및 해산에 관하여 결정하고 시행하도록 했습니다. 연구화 설립 이후 교육 분야 연구기관 간의 기능을 조정하여 중복을 해소했고, 2005년 9월 발족한 육아정책연구소의 기능을 사전 조정한 바 있습니다.
셋째, 연구기관의 연구 실적 및 경영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는 연구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서 각 소관 연구기관이 수행한 1년간의 연구와 경영 그리고 리더십 분야를 평가했습니다. 평가 결과는 원장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자료로도 활용되었습니다.
넷째, 연구기관 간 협동연구를 위한 지원입니다. 소관 연구기관이 국가의 주요 정책현안에 대하여 기관 간 협동으로 연구를 수행하도록 권장하고 지원하는 것은 연구회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2000년부터 시행된 인문정책연구도 학제 간 협동연구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Q당시 인문사회연구회의 임무, 역할 수행을 평가하신다면?

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

A인문사회연구회의 기능은 대체로 잘 수행되었다고 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첫째, 연구회 출범 전 각 연구기관은 정부부처에 소속되어 있어서 부처의 간섭이 매우 심했지만, 연구회 출범 이후에는 연구자율성이 크게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처 소속으로 있을 때에는 정부의 정책연구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었지만, 부처로부터 요구와 간섭이 많아서 자율적이고 중립적인 연구 수행에 큰 제약을 받았습니다. 연구회가 출범한 후 각 부처의 요구를 반영하여 각 연구기관이 자율적으로 연구하도록 했으며, 연구 성과는 관련 정부부처는 물론 국민 전체가 활용하도록 공개했습니다.둘째, 각 연구기관 간-학제 간 협동연구가 이루어지는 데 연구회가 크게 기여했습니다. 연구회 출범으로 인문사회 분야의 학제 간-기관 간 협동연구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연구회 연구기관간 협동연구 과제를 발굴하고 연구비를 배정하여 매년 협동연구 수행을 정착시킨 것은 바람직한 일이었습니다.
셋째, 연구회가 평가제도를 도입해 연구 및 기관 경영 성과를 평가해 평가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평가 결과를 원장 재임명의 근거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 성과뿐 아니라 기관 경영 성과에 대해서도 평가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지만, 질적 평가지표를 만들어 연구 성과를 평가하고 경영을 통한 리더십을 평가했습니다. 그 결과에 따른 연구 인센티브 도입과 기관장 연임 여부와의 연계는 인문사회 분야 연구의 새로운 차원을 정립한 것이었습니다.
넷째, 위기에 빠진 인문학 발전을 위해 인문정책연구를 수행한 것도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연구회는 재원을 마련하고 인문학자들의 이해를 구하면서 인문정책연구위원회를 만들어 인문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의 연구 수행을 지원했습니다. 다만 2000년부터 인문정책연구비를 확보하고 연구를 지속하면서 김영진 이사장님의 인문정책연구원의 설립 계획을 적극 지원했으나, 정부예산 당국을 설득하지 못해 미국과 영국, 프랑스 같은 인문학 연구 지원 기관 설립이 좌절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당시 소수 인원과 작은 조직이었지만,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 이러한 일들을 해냄으로써 추후 연구회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고 생각합니다.

Q근무하시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초대 김영진 이사장님은 행정의 달인이셨습니다. 소관 연구기관의 경영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원장의 자율적인 기관 경영을 적극 지원하셨습니다. 원장의 임기를 마치지 않은 기관 원장의 임기를 보장해주었고, 연구에 방해가 된다고 초도순시도 하지 않았습니다. 경영협의회를 각 기관에서 순회 개최하면서 자연스럽게 기관을 방문하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간부들과 회의를 하시며 긴 시간 동안 경연(<조선왕조실록>의 역사 및 교훈)을 베푸셨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인수 이사장님은 직원들과 독서발표회를 갖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대해 각자 발표하고 토론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간부들과 회의를 하시면서 <리더십 다이제스트>를 영문으로 읽으면서 연찬하시던 것도 생각납니다. 김인수 이사장님은 겨울 주일 아침에 교회 마당에서 빙판에 실족해 뇌진탕으로 세상을 떠나시며 장기를 기증하셨는데, 성인의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Q앞으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국책연구기관의 발전을 위한 조언이나 제안을 해주신다면?

A인문정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기관을 설립해 인문학 진흥을 위한 정책연구 기반이 구축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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