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2   “99년 연구회 체제”의 성립

개혁을 위한 첫 여정

김이교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책연구전략센터  소장 2021 겨울호

연구회 체제 성립 과정과 의의

정부는 효율적 경제·사회 운영을 위해 시대 변화에 맞춰 행정 체제의 구조와 전략을 개편해야 할 책임이 있다. 특히 오늘날의 지식 기반 사회에서는 국가 연구 체제 정책의 혁신을 위한 지속적 변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1997년 말 닥친 외환위기 극복을 과제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신공공관리론의 개념을 도입해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했다. 공공부문 개혁을 위해 기획예산위원회의 정부개혁실과 기획예산위원회 위원장 자문기구인 행정개혁위원회를 설립했는데, 행정개혁위원회는 국민의 정부 공공부문 개혁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정부출연(연))의 개혁을 추진해 1999년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이하 정부출연기관법)을 제정, 연구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러한 연구회 중심의 정부출연(연) 지도·관리 체제 개혁을 통해 정부출연(연)들은 선진국형 연구 지원 체제의 틀을 갖추게 되었고, 공공연구기관들의 경쟁성을 보장하며 성과관리가 가능한 구조로 재편되었다.

자율성 강화 등 개편 필요성 증대

5개 연구회 설립 현판식

외환위기 상황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주안점을 둔 개혁의 주된 부문은 공공부문, 정부 조직 부문, 금융 부문, 기업 부문, 노사관계였다. 이 중 공공부문과 정부 조직 부문은 당시 기획예산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추진했다. 1999년 1월에 제정된 정부출연기관법과 함께 정부출연(연)에 대해 이루어진 구조조정은 공공부문 첫 번째로 착수한 개혁 과제였다. 실제로 당시 기획예산위원회가 당면한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 대상은 공기업 부문이었으나 이에 앞서 정부출연(연)들이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정부출연(연) 지원 체제 개혁의 기본 내용은 정부출연 (연)들을 부처 산하기관 형태에서 분리·독립해 연구 분야별로 수립된 국무총리 산하 5개 연구회(경제사회연구회, 인문사회연구회,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에 소속시키는 것이었다. 개혁의 기본 원칙은 정부출연(연)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연구 성과와 기관 운영에서 ‘책임성’을 강화하는 데 두었다. 1970년대부터 설립하기 시작한 경제·인문사회계 정부출연(연)은 정부 각 부처의 정책기획 능력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하지만 1985년 이후 각 부처의 산하 연구기관 설립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졌고, 1990년대 초반부터 경쟁력 있는 민간 연구기관 및 유능한 연구인력이 증가하는 등 급격한 환경 변화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출연(연)의 역할과 기능 재설정과 내부 경영 시스템 개선이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당시 제기된 문제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구기관의 자율성이 부족했다. 정부출연(연)은 특정 부처와의 예속적 관계 아래 운영되어 연구의 중립성과 객관성이 낮았다. 국가 경제 전체보다는 부처 이기주의를 반영·지원하는 방향의 연구가 많아졌다. 연구기관의 자체 평가에서도 장기 정책적인 연구보다는 부처가 요청하는 현안 문제, 단기 정책과제 수행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둘째, 정부부처의 입장에서 편의와 미흡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다. 산하 정부출연(연)을 보유한 정부부처들은 정부출연(연)이 주는 편의성에 만족하면서도, 연구 결과의 질이 실제 정책 수립 및 집행에 활용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이중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셋째, 국가 전체적으로 기능 중복 및 생산성 부족의 문제가있었다. 정부출연(연) 간 경쟁적 연구 영역 확장으로기능이 중복되는 반면, 기관별로 특화된 전문 연구 활동은 점차 위축되고 있었으며, 민간기업 및 대학 연구소 등과도 역할 구분이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한편으로는 연구 기능이 정부출연(연)별로 분산되어 복합적인 사회 전체 시스템적 정책현안에 대한 문제해결 및 대응능력이 미흡했다. 즉, 소관부처가 달라 연구 사업의 기획·선정·관리·평가 체제의 통합 조정이 곤란했고, 국가 차원의 대규모 장기 연구과제의 수행 방향에 혼선이 발생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정부출연(연)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이 커져왔으며,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부터 정부출연(연)의 개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정부 산하기관 구조조정 방향으로 유사·중복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의 통폐합, 민간으로 이양 가능한 분야의 조기 민영화, 모회사의 설립 목적과 무관한 자회사 정리, 조직 신설·확대 및 자회사 설립 시 통제 장치 마련 등 4대 기준을 제시하고,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 제정을 추진했다. 또한 새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산하기관 구조조정 작업은 대통령 직속의 기획예산위원회에서 추진토록 하고, 정부 산하기관의 관리 및 심사·평가 기능은 국무조정실에서 담당할 것을 건의했다. 정부출연(연)의 경우 1개 부처 내 중복된 연구기관은 원칙적으로 1개로 통폐합하고, 소관부처가 다르더라도 기능별로 유사한 기관은 묶어 동일 기관으로 정비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었다.
한편 과학기술 분야에 대해서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설치로 과학기술 정책의 종합 조정 기능 강화, 기초과학 육성, 과학기술 인프라 확대, 과학기술자 우대 등을 제안했다.

정부출연(연)에 대해 이루어진 구조조정은 공공 부문 첫 번째로 착수한 개혁 과제였다.
개혁의 기본 원칙은 정부출연(연)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연구 성과와 기관 운영에서 ‘책임성’을 강화하는 데 두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출범식

두 차례 공청회를 통한 개편안 마련

1998년 4월 3일 기획예산위원회는 정부출연(연) 체제를 개선하기 위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기본 구상을 구체화한 ‘정부출연(연) 경영혁신 추진지침’을 제시했다. 지침에서는 심각한 위기 국면을 맞이한 사회 각 부문의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혁신하고자 공공부문의 과감한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민간 부문의 구조조정을 선도할 것임을 천명하였다.
지침에서는 정부출연(연)의 개별 연구원 설립법을 그대로 두고 관리 운영을 위한 별도의 특별법을 만드는 방식을 채택해 정부출연(연)을 국무총리가 관리하도록 하고, 통폐합되는 연구기관은 공동관리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정부출연(연) 운영 시스템을 개선하고, 연구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했다.
기획예산위원회는 공공 분야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1998년 4월 15일 기획예산위원회 위원장 자문기구로 행정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행정개혁에 관한 대안을 마련해 기획예산위원회에 건의하도록 했다. 행정기획위원회는 출연(연) 경영혁신 방안을 마련해 4월 20일 제1차 공청회에서 발표했다.
제1차 공청회에서는 인문사회계 출연(연)의 경영혁신을 위해 ① 현행 체제 유지 및 운영 시스템 개선 방안, ② 부처별 1개 연구기관 설립 방안, ③ 연구 기능 분야별로 재편하는 방안, ④ 종합 연구지원단하에 일원화하는 방안 등 네 가지 안이 제시되었다. 토론 결과 물리적인 통폐합보다 유사·중복 기능을 합리적으로 정비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운영체제 개선과 관련해서는 대학 및 민간 연구소와 경쟁하는 체제 도입, 대학과 연구소 간 인력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 기관장 선임 절차의 공정한 운영 등이 논의되었다.
5월 8일 열린 제2차 공청회에서는 행정개혁위원회 출연연구기관 분과위원회에서 마련한 경영혁신 시안이 제시되었다. 시안에서는 운영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첫째 연구 생산성의 향상을 위한 성과주의에 입각한 인센티브제 구축, 둘째 자율과 책임의 확대 및 민간경영 개념의 도입을 위한 원장의 공모 혹은 추천제 도입,연구원을 계약직으로 채용, 정원 관리의 폐지, 발생주의 회계 원칙 도입 등, 셋째 개방형 연구 시스템 구축으로 산학연 협동연구 활성화, 넷째 정부출연(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출연(연)의 예산 지원 방식의 획기적 전환, 수요가 적은 부문은 출연금을 확대하고 민간과 경쟁이 가능한 분야는 민간 위탁 또는 민영화를 검토하는 것 등이 제안되었다.
또한 관리 방식의 개선을 위해 첫째 주무 부처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하고 정부출연(연)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하고자 개별 설립법을 폐지하고, ‘정부출연(연)관리기본법’을 제정해 연합 이사회를 별도로 두고 인문사회 분야 2개, 과학기술계 3개 등 5개 연구회를 두도록 하며, 둘째 통폐합을 지양하고 유사·중복 기능을 합리적으로 정비하도록 하고, 셋째 기본 연구비는 출연금으로 계상해 나머지 연구 사업비는 주무부처에 계상하여 출연(연)과 민간 연구소 간의 경쟁을 통해 용역을 발주하거나 부처 내에 박사급 계약직 연구원을 두어 수행하도록 했다.
제2차 공청회에서 ‘정부출연(연)관리기본법’을 상정한 것은 지침에서 제시한 ‘정부출연(연)관리법’과 같은 취지에서 개별 정부출연(연)의 기존 설립법들을 인정한 채 이들의 관리·운영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두 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기획예산위원회는 5월 13일 정부출연(연) 경영혁신 방안을 마련해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공청회에서는 정부출연(연)과 주무 부처의 소속 관계를 해소하고 기존 정부출연(연)별 이사회는 폐지하며, 사회과학계 2개, 과학기술계 3개 등 비상설 연합 이사회를 운영한다는 내용을 담은 ‘정부출연(연)관리기본법’(가칭)을 조속히 제정하도록 했다. 이 관리기본법은 각 연구기관의 설립법을 모두 폐지하고 이 법에 통합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는 제2차 공청회안에서 기존 설립법을 인정한 것과 달라진 것이다. 정부는 정부출연(연) 경영혁신 추진 상황 점검, 노사정위원회 공공부문특위위원들과의 협의, 당정협의, 법제처 법률안 심사 등을 거쳐 법률안을 차관회의(10. 22.) 및 국무회의(11. 7.)에서 의결해 11월 14일 ‘정부출연기관법’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을 중심으로 12월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504호)에서 개최된 제3차 공청회는 ‘정부출연기관법’의 주요 내용에 관한 공청회로 진행했다. ‘정부출연기관법’은 두 차례의 공청회와 입법예고 (7. 10.~30.)를 거쳐 수렴된 의견을 반영해 성안되었으며, 5개 연구회(경제사회연구회, 인문사회연구회,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를 두어 정부출연(연)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했다. 이사장을 포함한 15인 이내의 이사 및 감사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사업비는 출연금(경상비+기본사업비)과 정책연구비(연구개발비)로 구분하였다. 아울러 계약제 등 민간 경영 개념의 도입, 산학연 협동연구를 전제로 한 자율성 보장, 원장의 책임경영 보장 등의 내용을 담았다.
법률안의 명칭에 관하여 국회 법사위에서는 소관 연구기관에 대한 관리·운영뿐만 아니라 ‘육성’을 강조해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로 변경하였다. 그러나 육성을 위한 제도가 법률안에 추가로 반영된 것은 없었다. 법률안은 1999년 1월 5일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1월 26일 시행령안의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월 29일 법률 및 시행령이 공포되어 발효되었다. 국무총리는 법률에 정해진 규정에 따라 연구회별로 이사장, 이사(14인), 그리고 감사를 임명했고, 1999년 3월 15일에 5개 연구회 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국가 성장역량 증진을 위한 출연(연) 개혁

우리나라 연구회 체제(council system)는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 연구회 체제를 벤치마킹해 구상한 것이다. 특히 독일의 경우는 공공 연구기관들이 특정 부처(BMBF, 교육과학연구기술성) 산하에 집중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연구회 역할을 하는 연합 이사회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모델이 되었다. 1999년 3월 15일, 정부는 새로운 법률에 따라 국무총리 산하에 5개 연구회를 설립하고, 총 43개의 정부출연(연)을 전문 연구 분야에 따라 적게는 4개 연구기관, 많게는 14개 연구기관까지 각 연구회에 소속시키는 소위 ‘연구회 체제’를 출범했다.
‘정부출연기관법’의 목적은 지금까지 개별 단위로 존재하면서 각 정부부처의 예속하에서 활동하던 과학기술계 및 경제·인문사회계와 관련한 모든 정부출연(연)을 유사 주제별로 하나의 연구회 구조 안에 묶음으로써 연구 자원의 유기적 활용으로부터 시너지 효과를 유도하고, 정부부처에의 예속적 개념을 없애며, 연구 활동을 수요와 공급의 경쟁이라는 시장원리가 지배하는 연구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있다.

국가의 성장역량 증진을 위한 개혁은 계속되어야

연구회 체제 성립으로 이뤄진 정부출연(연) 개혁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등에 의해 내부 접근 형식으로 정부의제화되었으나,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위원으로 이루어진 행정개혁위원회, 국회 상임위원회, 공청회 등 다양한 참여자의 역량에 의해 정책 결정 과정으로 진행했다. 따라서 정부출연(연) 개혁 과정은 거버넌스의 기초적인 적용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정책 과정 참여와 참여자 간의 상호 협력을 통해 국가 연구 지원 체제를 구축한 것은 연구회 체제가 폭넓은 지지 기반 위에 우리나라 국가 혁신 체제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정부출연(연)의 개혁은 국가의 성장 역량 증진을 위해 지속적으로 진행해나가야 할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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