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1   세계를 이끄는 미국의 싱크탱크와 대한민국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코리아로

오미연애틀랜틱 카운슬 아시아프로그램  국장 2021 겨울호

“ ‘워싱턴의 언어’로 미국 싱크탱크와 소통하라 ”

2019년 2월 문희상 국회의장과 방문단의 워싱턴 방문 시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워싱턴 한반도 전문가들과 비공개 세션 진행

그동안 워싱턴의 싱크탱크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을 요약하자면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첫째는 워싱턴 싱크탱크의 역할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활동 영역이 훨씬 더 광범위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수면 위로 드러나는 공개 행사 및 전문가들의 발언 및 출판물 외에도 비공개 라운드 테이블, 비공개 면담 및 브리핑, 기관 대표단으로 구성된 해외 방문 등을 통해 아주 다양한 기관 및 개인들과 교류하고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국가안보 및 외교정책 전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담론을 형성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존스 장군 등을 비롯한 애틀랜틱 카운슬 방한단과 함께 2019년 매일경제가 주최한 세계지식포럼 ‘미중경쟁시대의 안보’ 세션에 패널로 참석

싱크탱크의 꽃은 ‘비공개’ 형태의 면담

사실 싱크탱크의 꽃은 ‘비공개’라고 붙여진 여러 형태의 면담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양한 주체와 다양한 의사소통 채널에서 축적한 비공개 활동을 통해 기존 정책을 분석하고 새로운 정책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틀랜틱 카운슬 이사회 멤버(Board of Directors) 의 요청으로 한국의 대선 및 국내 정치 상황과 관련해 브리핑을 할 수도 있고, 파트너 기관의 요청으로 대만해협과 우크라이나의 군사 위기가 국제 및 아시아 정세에 끼칠 영향을 분석하는 브리핑을 할 수도 있다. 반도체 공급망 이슈에 대해 관련 정부부처 및 기업, 산업협회, 그리고 의회와 개별적 혹은 소규모 비공개 미팅을 진행하기도 한다. 한국 혹은 아시아 주요 동맹국의 고위 관료가 워싱턴을 방문해 주요 사안별로 애틀랜틱 카운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자 소규모 면담을 요청하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미국 행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참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워싱턴의 정책 커뮤니티는 정책을 분석하고 제언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주요 정책 및 사안별로 행정부가 하는 외교 및 안보정책을 지지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는 담론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일련의 비공개 활동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멀리 아시아에서 워싱턴의 싱크탱크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역할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공개 활동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은 워싱턴 싱크탱크의 펀딩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워싱턴 싱크탱크는 한국이나 아시아 국가에 있는 싱크탱크와는 펀딩 구조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운영 방식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워싱턴 주요 싱크탱크의 펀딩 출처(funding source) 를 들여다보면, 크게 네 가지-(미국 및 외국) 정부, 재단, 개인, 그리고 사기업-로 볼 수 있다. 각 싱크탱크별로 네 가지 펀딩 비율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주로 이 네 가지 펀딩 출처를 통해 수많은 파트너십을 맺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며, 특히 초당적(bipartisan) 싱크탱크의 경우 펀딩의 출처는 더 다양하다.
이렇게 미국 내 그리고 해외의 다양한 펀딩이 협약을 통해 체결된 파트너십으로 싱크탱크에 지원되기 때문에 워싱턴의 싱크탱크는 소수의 펀딩에 의존하지 않고 지적 독립성(intellectual independence)을 보장받아 자유롭게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다. 주로 한 개인 혹은 기업의 펀딩에 의존하거나, 정부 산하 기관으로 속해 있는 한국의 싱크탱크와는 구조적으로 달라 그 활동 범위와 역할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 펀딩을 제공하는 주체가 정책의 결과물이나 형성 과정에 영향을 끼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국제안보 환경이 변하면서 과거에 비해 워싱턴의 싱크탱크 또한 펀딩에 영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더 요구되고 있다. 팬데믹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미중 경쟁이 심화되며, 중국 및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한 견제가 점점 심해지면서 국제안보 이슈에 대한 협력 개념이 바뀌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미중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이 미국과 함께, 그리고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국가안보 정의가 포괄적 개념으로 변화

지난해 9월 미국 애틀랜틱 카운슬 스튜디오에서 한반도 이슈를 주제로 열린 연례 포럼

그간 워싱턴의 싱크탱크에서 일하면서 느낀 두 번째 중요한 현상은 국가안보의 정의가 예전처럼 군사 및 방어에 국한된 전통적 개념에서 경제, 기술, 사회, 문화, 기후변화 및 에너지, 국제 보건 등과 같은 포괄적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 핵무기와 같은 군사적 위협이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였다면, 이제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이 인공지능이나 5G 3 지난해 10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와 같은 차세대 테크놀로지, 사이버 및 데이터 안보, 팬데믹, 디지털 시대의 무역과 거버넌스, 가짜 뉴스 혹은 거짓 정보(disinformation and misinformation), 지구온난화 현상, 주요 산업의 공급망 등으로 광범위하게 넓어졌다. 따라서 국가안보 개념은 이러한 새로운 위협 요소와 위기 요인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resilience)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가로 많은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는 현실이다.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아시아 안보 프로그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시아 주요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을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데, 주요 키워드는 경제안보, 차세대 기술, 공급망, 팬데믹, 클린 에너지, 인도태평양의 안보 및 무역 환경의 변화 등이다. 심화되는 미중 경쟁 구도와 팬데믹으로 급변화는 지정학적 환경에서 어떻게 미국과 동맹국들 간 협력을 심화하고 저변을 넓힐 수 있는가가 화두의 중심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요 사안별 다자 협력에 대한 논의라 할 수 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 시절 이슈의 중심에 있던 북한 비핵화가 이제는 대만으로 옮겨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2020년 5월에 열린 Women’s Foreign Policy Group(WFPG)의 ‘코로나 팬데믹이 지정학 및 안보에 끼치는 영향’ 세션에 공개 패널로 참여

‘워싱턴의 언어’로 한국을 알려야

이쯤에서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급변하는 국제 정치·경제 지형에서 한국의 외교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더욱이 한국은 2022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치를 예정이고, 5월에는 새 행정부가 들어선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안이 국내 정치 위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양쪽 대선 후보 캠프에서 한반도를 넘어 Global Korea(글로벌 코리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든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상회담 뒤 발표한 공동성명에 담긴 폭넓은 합의 사항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가를 지금부터 고민하고, 구체적 정책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한미동맹의 우선순위라 말할 수 있겠지만, 공동성명에 담긴 다른 내용들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현 워싱턴 분위기와 국제정세에서는 더 중요해 보인다.
미중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한반도를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이 미국과 함께, 그리고 다른 동맹국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한·미·일 삼각 협력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도 이제는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단순히 미국에 도움이 되는 정책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과 연결되는 주요 사안들에 집중해 한국이 국제사회 및 워싱턴 정책 커뮤니티의 담론을 리드하고 만들어나가야 한다. 또한 한국이 이미 잘하고 있고, 미래에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지 ‘워싱턴의 언어’로 알리는 과정 또한 중요하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통해 글로벌 사회에서 저변을 넓히고 있는 중요한 현시점에서, 이를 ‘워싱턴의 언어’로 알리는 작업을 통해 한국의 안보 및 경제외교 저변을 확대함으로써 유기적으로 연결해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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