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여행으로 읽는 5극3특
정부가 전국을 5대 초광역권(수도권·중부권·대경권·호남 권·동남권)과 3개 특별자치도(강원·전북·제주)로 나누 어 균형성장을 추진하는 ‘5극3특’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첨단산업 육성, 광역 교통망 구축, 지방대학 혁신 등 굵직한 청사진이 설계도 위에 빼곡하다. 그러나 지역이 실제로 살아나는 장면은 언제나 동네에 서 먼저 시작된다. 인프라가 사람을 오게 만드는 조건 이라면, 동네는 사람이 머물게 만드는 이유다. 독립 브 랜드들이 골목에 집적하고, 그 집적이 지역의 정체성을 만들며, 그 정체성이 다시 사람과 자본을 끌어들이는 ‘로컬 브랜드 생태계’, 이것이 살아있는 동네 경제의 작동 원리다. 5극3특 각 권역에는 이미 그 동네들이 존재한다.
부산 전포동카페거리ⓒ비지트부산
동남권(부산·울산·경남)
부산 전포동은 한때 전자상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임대료가 낮은 골목에 청년 창업자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독립 카페와 공방이 밀 집한 골목상권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계획된 것이 아니라 아래로 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동네 경제의 전형이다. 통영 봉평동 봉수 골은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거장 전혁림 미술관 옆 골목에 자리한 독 립서점 ‘봄날의 책방’을 중심으로 예술가, 공방, 노포, 카페가 모여 든 예술인 마을로, 남해안 특유의 감성과 문화적 깊이를 동시에 품 고 있다. 창원 용호동 가로수길과 진주 중안동 가로수길은 산업도 시 이면에 잠재된 문화적 소비 욕구를 흡수하며 지역 젊은층의 새 로운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울산 방어동 꽃바위 일대는 조선·화학 공업도시라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이색 동네로, 외국인 상업시설이 밀집해 ‘제2의 이태원’으로 불린다.
경주 황리단길 전경ⓒ한국관광공사 김지호
대경권(대구·경북)
대구 삼덕동은 근대 건축물이 줄지어 선 골목에 독립서점과 소규모 갤러리, 공방이 어우러지며 대구 문화 씬(scene)의 새로운 거점으 로 부상하고 있다. 경주 황남동은 황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 려진 곳으로, 천년 역사도시의 한옥과 골목을 배경 삼아 청년 창업 자들이 유기적으로 만들어낸 골목상권이다. 계획된 관광지가 아니 라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모여든 창업자들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크 리에이터 타운의 교과서적 사례다. 안동 하회마을은 전통문화 자원 이 로컬브랜드의 토대가 된 사례이고, 영주 휴천동 학사골목은 소 도시 원도심의 조용한 재생을 보여준다. 구미역 인근에 위치한 구 미 금리단길은 전자·반도체 산업도시 구미에서 골목상권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린다. 대전 성심당거리ⓒ대전투어
중부권(대전·충청·세종)
대전 은행동 성심당거리는 단 하나의 로컬브랜드가 동네 전체의 정 체성을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1956년 창업한 성심당이 70년의 세월을 거쳐 골목 경제의 앵커스토어가 되었고, 성심당이 있기에 은행동을 찾는 사람들이 주변 골목상권 전체를 살리고 있 다. 공주 제민천은 도심을 흐르는 물길을 따라 카페와 공방, 소규모 편집숍이 자연스럽게 들어서며 역사문화도시 공주의 새로운 얼굴 이 되었다. 천안 원성동, 충주 관아골, 청주 중앙동 소나무길은 충청 권 중소도시들이 저마다의 역사적 자원을 바탕으로 원도심 골목 재 생을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 현장이다.
광주 양림동 공예특화거리ⓒ광주시
호남권(광주·전남)
광주 동명동은 예술가와 공예 창업자들이 집적하면서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문화 생산 지역으로 진화한 동네다. 같은 광주의 양림 동은 근대 선교사 유적과 골목 카페가 공존하는 독특한 역사문화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두 동네는 광주의 로컬브랜드 생태계를 대 표하는 서로 다른 결의 동네다. 목포 만포·유달동은 근대 항구도시 의 기억을 품고 있고, 순천 향동 옥리단길은 생태도시 순천의 여유 로운 감성을 담고 있으며, 나주 향교길은 천년 역사도시의 결을 간 직한 골목으로, 수도권과는 전혀 다른 결의 골목문화가 호남권 곳 곳에서 형성되고 있다.
인천 개항누리길ⓒ인천투어
수도권
서울 망원동은 마포 일대에서 밀려난 청년 창업자들이 한강 인근 골목에 자리를 잡으면서 ‘살고 싶은 동네’의 아이콘이 되었다. 연희 동은 연세대학교 인근 조용한 주택가가 독립 레스토랑과 편집숍, 공방의 거리로 변모한 사례로, 대학가의 지적 분위기와 골목 창업 문화가 자연스럽게 결합한 동네다. 수원 행궁동은 세계문화유산 화 성 인근의 원도심 골목상권으로, 역사 자원과 로컬 창업이 결합한 좋은 사례다. 인천 개항로는 개항기 근대 건축물이 골목 콘텐츠의 배경이 되어 전국적인 여행지로 부상했고, 일산 밤리단길은 수도권 신도시에서도 동네 골목상권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양양 죽도해변ⓒ양양군청
강원특별자치도
강릉 명주동은 독립 카페 창업의 전국적 모델이 된 곳으로, 커피 문 화의 성지라는 브랜드를 골목 단위에서 만들어냈다. 속초 동명동은 항구와 골목이 어우러진 여행 상권으로, 양양 죽도해변은 서핑 문 화가 로컬브랜드 생태계를 만든 독특한 사례다. 춘천 죽림동 육림 고개는 원도심 재생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골목이고,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는 소도시에서도 로컬 문화가 싹틀 수 있음을 증명하는 현장 이다.
고창 상하농원ⓒ투어전북
전북특별자치도
전주 한옥마을은 전통 자원이 로컬브랜드의 강력한 토대가 될 수 있음을 전국에서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동네다. 인근 서서학동은 전주교육대학교와 국립무형유산원을 중심으로 예술가와 공예 작 가들이 모여들면서 한옥마을의 상업화에서 벗어난 조용하고 깊이 있는 예술인 마을로 성장하고 있다. 군산 영화타운은 시간이 멈춘 듯한 근대 거리가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된 동네이고, 익산 중앙동과 고창 상하농원은 중소도시와 농촌에서도 로컬브랜드 생태계의 씨 앗이 뿌리내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제주 세화해녀민속오일시장ⓒ비지트제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탑동과 전농로는 원도심의 새로운 로컬 감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 동네로, 관광지 제주가 아닌 생활도시 제주의 얼굴이다. 구좌 세화리는 시골 오일장이 있는 작은 마을이 전국적인 로컬 여행지로 떠오른 사례로, 기획 없이 입소문만으로 만들어진 동네 브랜드의 힘을 보여준다. 서귀포 이중섭거리는 예술가의 흔적이 동네 경제의 자원이 된 사례이고, 성산 고성리는 복합문화공간 플레이스캠프제 주와 성산포성당을 두 축으로 삼아 성산일출봉 인근의 소박한 마 을이 감성 여행의 거점으로 변모한 곳이다.
5극3특
5극3특이 진정한 균형성장으로 이어지려면, 산업과 교통 인프라만큼이 나 동네 단위의 로컬브랜드 생태계 육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각 권 역의 전략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그 일자리가 사람을 불러들이며, 그 사람들이 동네에서 소비하고 창업하고 문화를 만들 때 지역은 비로소 살 아있는 경제 단위가 된다. 살고 싶은 동네, 머물고 싶은 골목이 없다면 아 무리 좋은산업 인프라도 사람을 붙잡을 수 없다. 5극3특의 완성은 결국 전국 곳곳의 골목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모 종 린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2026.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