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를 위한 제언  

신냉전 (new cold war) vs 지구행성(planetary) 리버럴의 고뇌

안병진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2021 겨울호

"오늘날 미국은 누가 집권하든 간에 이 신냉전과 지구행성의 차원이 혼란스럽게 교차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지금 미국(과 세계의)행위자들은 과거 근대로부터물려받은 근대성과 지본주의의중첩된 모순의 후계자이며,
새롭게 구축될 체제가 무엇일지혼란스러운 상태로 좌충우돌하는,흔들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공통의 유대는 우리 모두가 이 조그마한 지구행성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삽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존 F. 케네디, 1963년 아메리칸대학교 연설 중에서

2022년 바이든의 미국은 깨어나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팬데믹 뉴노멀과 인플레, 암운의 중간선거, 우크라이나, 대만, 이란(혹은 북한?) 등에서의 불확실한 상황 등 ‘불가능한 대통령직’(impossible presidency)의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건의 진리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우리의 예측은 반드시 틀릴 운명이다. 오히려 이러한 시기에는 보다 신중하게 과거의 교훈을 떠올리며 부단히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 인식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신냉전 리버럴의 재탄생

2022년을 맞이한 나의 가장 큰 관심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바이든은 1960년, 1962년, 1963년 중 어떤 시기 케네디의 부활인가? 이 질문은 미국과 세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60년대 상원의원 시절 한때 케네디는 낭만적 ‘관여(engagement)’에 대한 환상을 가진 바 있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의 방어적 민족주의 성향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냉전 도구로서의 태도와 지정학적 위치를 과소평가했다. 1990년대 상원의원 시절 바이든도 낭만적 관여주의자였다. 그는 중국 자본주의 질서 편입의 의미를 과장하고, 비자유주의 체제 속성을 과소평가했다. 1962년 케네디는 냉전 리버럴이었다. 그는 이제 소비에트와 쿠바의 전체주의 속성을 냉정하게 이해했지만, 때로는 트라우마와 과잉 공포 속에서 오인을 거듭했다. 오늘날 바이든은 신냉전 리버럴의 일부 속성을 가진다. 그는 소비에트와 비교할 수도 없는 강력한 비자유주의 전위이자 미래 패권 모델로서 중국의 위험성을 감지하지만, 때로는 방어와 공세가 혼재된 중국의 위치에 대해 과장된 위협감을 가진다. 1963년 케네디는 비록 소비에트의 권위주의 속성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지구행성 거주자로서 공존의 운명을 위한 고투를 이해한 지구행성주의자였다. 과연 향후 바이든은(그리고 시진핑은) 1963년 케네디(및 흐루쇼프)의 부활일 수 있을까? 어떤 큰 사건이 그들을 1962년에서 1963년 케네디로 이동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는 오늘날 지구행성을 살아가는 모든 거주자가 직면하는 질문이다.

핵전쟁의 위험과 함께 기후 파국이라는 실존적 위험이 나중이 아니라 동시에 중첩된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의 상승을 저지하면서도 도모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이 직면한 모순 상황

오늘날 바이든 등 미국 리버럴들의 문제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에피소드를 통한 질문이 도움이 된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는 바이든 정부 선임 자문관인 어니타 던(Anita Dunn)에게 다음 같은 질문을 던진 바 있다. 그는 코로나19 구제책, 인프라 및 곧 제기될 미국 가족계획이라는 세 가지 대담한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의 공통 지반은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이에 대한 던의 대답은 바로 ‘중국’이었다. 바로 이 점이 미국 리버럴들의 새로운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사실 이미 출범 직후부터 바이든 행정부는 잠정 국가안보 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패권 도전자로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국가 안보에 함의를 줄 수 있는 반도체, 배터리, 5G 등 전략적 기술영역에서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s) 재조정을 공격적으로 시도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사이버 진영 대립과 새로운 경제공동체 구축 영역으로 전선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또 하나의 질문은 2020년 대선 캠페인 과정 중 타운홀 미팅에서 제기되었다. 한 평범한 유권자는 대선 후보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기후 위기가 악화되어 다국적 보험회사들이 파산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당신의 대책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대선 캠페인 상황에서나 지식인에게는 다소 생경한 이 질문은 미국 내 만연한 기후 위기에 대한 위기감의 폭과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이 지구행성 정치학(planetary politics)이란 측면에서만 보면바이든은 1962년의 케네디보다 더 불운하다. 그 당시 케네디는 아슬아슬하게 핵전쟁의 위험성을 피하고 나서야 인류가 결국 공통 호흡 운명체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오늘날 바이든에게는 핵전쟁의 위험과 함께 기후 파국이라는 실존적 위험이 나중이 아니라 동시에 중첩되어 있다. 이미 포츠담연구소 등 세계 유수의 기관들은 기후 위기를 안정적 국면으로 도저히 되돌릴 수 없는 소위 ‘티핑 포인트’까지 몇 년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지금 현실은 마치 ‘겨울이 온다(winter is coming)’고 경고한 드라마 <왕좌의 게임>과도 같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처럼 세계는 지금 다가오는 겨울 앞에서도 국가 간, 체제 간 갈등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바이든은 이 중첩된 겨울 앞에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비자유주의 체제인 중국의 상승을 저지하면서도 동시에 기후 레짐(climate regime)으로서 중국의 상승을 도모해야 하는 모순적이고 힘든 곡예를 해야 하는 상황 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은 누가 집권하든 간에 이 신냉전과 지구행성(혹은 나아가 제 2의 트럼프가 배합할 신고립주의)의 차원이 혼란스럽게 교차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지금 미국(과 세계의) 행위자들은 과거 근대로부터 물려받은 근대성과 지본주의의 중첩된 모순의 후계자이며, 새롭게 구축될 체제가 무엇일지 혼란스러운 상태로 좌충우돌하는, 흔들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이행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그 출발은 신냉전과 지구행성주의가 혼재하고 갈등하는 복잡계의 세상을 이해하며, 그 균열과 모순의 틈새에서 미래로의 출구를 부단히 만들어가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걸어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이다. 이 길을 함께할 등대의 빛은 다음 문구로 집약될 수 있다. ‘겸손하게, 그리고 다원적으로(Be modest and pluralis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