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는 해답을 제시하는 기능을 넘어 사회가 마주한 물음에 함께 머무르고 숙고하는 과정이다. 변화가 일상이 된 시대 속에서 정책연구기관은 정책 결정과 집행의 전 과정에 전략적으로 관여하며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공공지식의 흐름을 설계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무엇을 연구하고 누구와 연결되며 어떻게 공공성과 책임을 구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이제 정책연구의 본질에 가까운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국가정책연 구체제의 미래를 기획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흐름 속에서 국제적 논의의 장에 참여하여 정책지식 창출자로서의 책무와 지속가능한 정책연구 생태계 설계방향을 논의하고자 하였다.
정책연구의 글로벌 동향과 흐름
복잡하고 다층적인 정책환경 속에서 정책연구기관의 기능과 위상이 빠르게 재정립되고 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는 정책연구기관을 단순한 분석 기구가 아닌 정책지식의 창출과 확산을 주도하는 전략적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대학, 민간연구소, 정부연구기관 간의 경계가 유연해지고 다학제적 접근과 시민참여형 연구 방식이 확산됨에 따라 정책연구는 점차 개방형·문제해결형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참석한 미국행정학회(ASPA) 연례학술회의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책임있는 공공 리더십’과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협력적 정책 거버넌스’ 등의 의제가 부각되었으며, 정책연구기관은 정책결정 과정의 동반자이자 정책지식 생태계의 조정자로서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고 있었다. 특히, 대주제는 “Not Robots yet : Keeping Public Servants in Public Service”로서 공직자의 역할이 기술적 자동화에 대체되지 않고 인간적인 판단과 참여가 여전히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공적 책임을 함축하는 주제로 고려되었다고 생각된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정책연구체제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제공하며 향후 연구회의 전략적 방향을 설계하는 데 중요한 참고 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책지식 창출 플랫폼으로서의 역할과 책임
글로벌 정책연구 환경이 개방성과 실용성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정책연구기관의 역할 또한 단순한 분석과 자문을 넘어 지식의 생산과 전략적 기획의 중심축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복잡한 사회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연구기관이 보다 공공적이고 실천 지향적인 지식창출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동시에 연구 자율성과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공공성과 책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운영 구조를 마련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하 ‘NRC’)는 국가정책연구 체제의 ‘발전방향기획’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3월 31일 개최한 미국 행정학회(ASPA)의 한국분과에 참가하였다. 한국분과는 “한국행정: 한국의 공공행정 실천에서의 교훈과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한국행정의 우수사례와 경험, 교훈과 시사점 등을 전 세계의 정부와 학계에 공유하고 국제적 차원의 연구·학문교류 강화 등 K-행정사례를 확산하기 위한 세션을 마련했다. 이에 국내·외 대학과 연구기관뿐만 아니라 행정안전부, 산업통상자원부, 산림청, 한국수자원공사 등 정부부처, 공공기관 20여 개 기관이 함께 참가하여 각 분야의 정책사례와 연구 결과를 논의하였다.
NRC 이지성 기획조정부장, 박정민 전문위원, 이창준 부전문위원은 한국분과에 참가하여 한국의 경제인문사회분야 정책연구 거버넌스 체제의 구조적 특징과 운영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NRC가 추진한 ‘2024 국가정책연구체제 인식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정책연구 체계 개선 노력, 향후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와 구상 등을 발표하였다. 특히 정부와 연구기관 간의 간접적이면서도 분권적인 조정 메커니즘을 특징으로 하는 국가정책연구체제는 자율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모색하는 정책연구 거버넌스 모델로 주목을 받았다.
발표에서는 국가정책연구체제를 구성하는 주요 가치(공공성·책임성)가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는 제도적 기반 위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조망하는 한편, 정책연구의 실행전략으로서 전략성과 시의성 또한 함께 논의되었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차원을 넘어 변화하는 정책환경 속에서 연구기관이 수행해야 할 실질적 책무를 성찰하고, 지식을 창출하는 기반으로서 정책연구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이에 NRC가 수행해 온 정책연구 거버넌스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 맥락에서도 정책지식의 공적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의미있는 사례로 평가되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라 하겠다.
지속가능한 정책연구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전략과 과제
정책연구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일 기관의 성과나 일회적인 제도개선을 넘어 정책연구 전반을 유기적으로 지탱하는 생태계적 시야가 요구된다. NRC는 제도적 기반 위에서 정책연구기관의 자율성과 전략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는 가운데 국가정책연구체제의 발전방향 모색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NRC와 소관 연구기관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과 꾸준한 소통인 바, 이는 정책연구의 정합성과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데 있어 본질적인 토대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조화롭게 구현하는 운영 구조, 정책 수요자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지식 순환 메커니즘, 더 나아가 중장기적 시야를 반영한 전략적 연구기획 체계에 대한 모색 등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정책연구 생태계를 이루는 다양한 주체-연구기관·정부·시민사회·학계-가 상호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공동의 방향을 설정해 가는 협력적 역동성이 함께 요청된다. NRC의 역할은 그러한 공동학습 과정을 촉진하고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행정학회참석은 국내 정책연구 거버넌스의 경험과 실험을 국제사회에 공유하고 성찰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NRC는 앞으로도 이를 계기로 한국형 정책연구 거버넌스의 특성과 가능성을 세계 정책연구 공동체와 지속적으로 나눌 예정이다. 국내 정책연구 생태계의 혁신은 폐쇄된 구조 속에서는 완성될 수 없다. 보다 유연하고 개방된 지식공동체와의 연대를 통해 정책연구가 지향해야 할 공공성과 실천성의 길을 함께 모색해 나가는 일 그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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