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Ⅰ   상생과 공동번영, 아세안 싱크탱크의 도약

아세안 싱크탱크와 ‘협력을 위한 열쇠’는 다양성과 신뢰성

<인터뷰> 박번순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 2022 가을호

“글로벌 소프트파워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는 지식자원의 투자가 우선되어야”

오는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세계의 시선이 인도네시아를 향하고 있다.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비전을 소개하며 핵심 파트너인 아세안과 전략적·미래지향적 협력을 통해 한-아세안 상생연대를 강화시켜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對아세안 전략의 방향성을 논의할 때 복잡하리만큼 다양한 기구가 등장한다. 아세안의 정책지식 생태계를 살펴보고 다양한 국가, 기구와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 답을 구하기 위해 박번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을 만났다. 박번순 연구위원은 산업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소를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정년퇴직 이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년 이상 동남아와 아시아 그리고 중국에 대한 종합적 이해와 교류·협력 방안을 깊이 고민해온 박번순 연구위원은 협력 파트너로서 아세안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며, 아세안의 특성을 반영한 정책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번 인터뷰는 2022년 9월 28일(수)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에서 홍일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의 진행으로 실시되었다.

홍일표 사무총장(이하 홍일표)

저서『아세안의 시간』을 보면, 20년 이상의 ‘동남아’와 ‘아세안’에 관한 연구 여정을 볼 수 있다. 얼마 전까지 고려대학교 경제통계학부 교수로 재임하시다가 퇴직하셨다고 들었는데 최근 근황이 궁금하다.

박번순 연구위원(이하 박번순)

1984년 산업연구원에 입사 후, 1989년부터 1년 정도 태국의 한 대학에 체류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태국이 연 13% 정도의 고도성장을 하고 있었지만 일반 국민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그전까지는 경제학자로 경제학 시장만을 이야기했다면, 이후 태국 학자들과 교류하며 실제로는 시스템, 정치, 제도가 경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태국에서 돌아와 개발도상국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동남아 연구를 하기 위해 삼성경제연구소로 전직했고 퇴직 후 대학에 몸을 담게 되었다.
아시아가 세계화(Globalization)되고 중국의 부상으로 아시아와의 관계가 아주 밀접해지는 흐름 속에서 연구 영역이 확장되며 동아시아 전체 경제통합, 중국-아세안의 관계를 연구했다. 동남아 연구를 하면서 3가지 기본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첫째는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이해하며, 개발도상국 사람들에 대해 동정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동남아의 진면목을 보고, 진실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동남아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할 수 없다. 셋째, 연구는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내 연구가 훗날 누군가에게 참고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현장을 중시하였다. 관찰을 하는 것이 단순한 통계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배낭을 메고 자주 동남아를 방문했다. 퇴직 직전 방학을 이용하여 40여 일 동안 터키(튀르키예)와 그리스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도 가능한 한 정부의 아세안 정책에도 기여하려 한다. 지난 정부 말 신남방추진위원회 민간위원회 활동을 한 2년 했고, 지금은 한-베트남 현인그룹 한국위원으로 있다. 내일도 베트남에서 있을 한-베 현인그룹회의에 참석해 한국과 베트남의 미래 30년의 발전 방향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홍일표

보통 ‘아세안=동남아’를 혼용해서 쓰기도 하고, 지난 정부에선 ‘신남방 정책’도 있었는데 세계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아세안의 ‘중요성’과 국제 상황 전반에 대해 ‘총론적 설명’을 부탁드린다.

박번순

동남아(Southeast Asia)라는 말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이 스리랑카에 동남아 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처음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동아시아에서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를 제외한 인도차이나반도와 그 남부 해양부에 위치한 11개 국가를 말하고 있다. 1967년 5개 국가(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가 동남아 국가연합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군사 안보를 중심으로 논의했다. 이후 1992년 제4차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며 협력을 확대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불거지며 아세안 정상회의에 한·중·일이 초청되었는데, 그것이 아세안+3 정상회의이다. 아세안은 국제정치경제 질서 속에서 개발도상국들이 결성한 국가연합으로 가장 성공적인 조직이라고 할 수 있으며 현재도 전략적,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국제화 과정에서 아세안에 진출했다. 외환위기를 아세안 주요국과 같이 겪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현재 아세안의 인구는 6.7억 명 정도이고 GDP나 수출입 규모도 세계 5위 안에 드는 중요한 지역이다.
몇 년 전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의 마지막 연설에서 싱가포르 총리는 “언젠가 아세안이 한쪽을(미국과 중국) 선택해야 될지도 모른다. 그날이 빨리 오지 않기만을 바란다”고 말했다. 아세안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미·중 갈등 속에서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할 상황에 있으며, 아세안 지도자들은 미·중관계 악화가 아세안에 중요한 도전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미·중 간의 갈등이 중견국인 대한민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을 대체하고 보완하는 협력 파트너로서 아세안의 중요성은 높다. 그러므로 중견국인 우리가 아세안과 대외적으로 협력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세안의 여러 국가가 개발도상국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성장 속도는 더 빠를 것이다. 개발도상국과의 협업 모델을 통해 세계 평화나 경제 발전, 사회적 진보에 기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세안은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홍일표

아세안에 관한 자료를 보면 다양한 형태와 이름의 기구가 등장한다. 아세안, 아세안경제공동체, 아세안+3을 넘어 최근에는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이는 주변 국가들의 복잡한 이해와 전략을 반증하는 것 같은데 ‘제도’와 ‘기구’ 차원에서 아세안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박번순

지금 아시아 지역에서는 수많은 국제기구 혹은 조직이 거론되고 작동하지만 동아시아에 등장한 아세안+3,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East Asia Summit) 그리고 아세안 지역포럼(ARF; ASEAN Regional Forum)은 모두 아세안이 중심이 된 조직이다. 아세안+3은 아세안과 한·중·일의 협의체로 주로 경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ARF는 1990년대 초에 발족한 아세안 주도의 안보대화 포럼이다. 일본 외에도 미국, 러시아, 인도, 캐나다 등 주요 역외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동아시아의 안보 전략 문제를 논하는 자리에서 우리와 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조직이기도 하다. EAS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아세안 13개국 외에 호주, 뉴질랜드, 인도, 미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새로운 EAS가 출범하게 되며 정체성이 취약한 조직이 되었다.
한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은 일종의 자유무역협정(FTA)으로서 경제통합을 지향했다. 오바마 정부의 클린턴 국무장관은 피벗 아시아(Pivot Asia) 정책을 주장하며 아시아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였고 한·중·일 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등을 포함한 아세안+6가 등장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은 아세안+6의 FTA로 15개국이 참여한 협정이다. RCEP이 아시아대양주의 경제통합체라면 CPTPP는 미국 등 미주국가가 참여한 것이다. 원래 오바마 정부가 추진한 TPP에 트럼프 정부가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창설한 임시조직이 바로 CPTPP이다. 최근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IPEF(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를 새로운 지역 전략으로써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원칙만 제시된 상태다.

홍일표

‘아세안의 싱크탱크’들 가운데 우리가 주목할 만한 싱크탱크들로는 어떤 곳들이 있는지, 그리고 ‘아세안 싱크탱크’들의 특징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박번순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연구위원(왼쪽)과 홍일표 사무총장(오른쪽)

박번순

큰 틀에서 볼 때 현재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국책연구기관은 베트남 사회과학원의 시스템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1953년 설립된 베트남 사회과학원은 산하에 2천여 명의 인력과 30여 개의 연구소를 두고 베트남 공산당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경제·문화를 비롯하여 인종·종족 문제까지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베트남의 사회과학원을 동남아 싱크탱크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말하긴 곤란하다. 대부분 국가의 싱크탱크에서는 전략 문제를 주로 다루지만 연구소에 따라 전략 및 국제관계, 심지어는 경제통상문제까지 한 조직에서 다루는 경우도 있다. 일부는 높은 수준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또 일부는 거의 이름만 있는 경우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CSIS; Centre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는 1971년 설립된 독립적 비영리조직으로서 정부 주도의 설립 기관은 아니지만 경제, 국제관계, 정치사회변화, 재난관리 등 인도네시아의 발전을 위한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경제사회 분야의 원로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어 인도네시아의 국제관계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1983년에 설립한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ISIS; Institute of Strategic & International Studies)가 대외정책 및 안보, 경제통상, 지역통합, 사회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한때 말레이시아의 유명한 지식인인 누르딘 소피(Noordin Sopiee) 박사가 ISIS를 장기간 이끌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영향력은 다소 줄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싱가포르 정부 주도로 설립된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가 있다. 이 연구원은 초대대통령 유소프 이삭(Yusof Ishak)을 기리기 위해 ‘유소프이삭연구원’이라고도 불린다. 국내보다 국제, 특히 아세안과 아시아 지역의 변화 상황을 중심으로 연구하며 전통적으로 동남아 지역경제, 동남아 지역사회문화, 동남아 지역 전략 및 정치를 중요 축으로 연구하고 있다.
오래전 ISEAS에서 방문학자로 있으며 느낀 재미있는 사실은 ISEAS의 연구 고객이 반드시 싱가포르 정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ISEAS의 연구 활동은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동남아 정보의 수집(도서관), 동남아에 대한 연구, 그리고 지식의 보급(출판)이다. ISEAS는 실제로 연구진의 수는 적지만, 전 세계적 연구자들의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하면서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끌고 간다. 따라서 동남아를 연구하는 많은 방문학자가 거쳐 가면서 토론의 장이 열리고 있다. 당연히 ISEAS의 출판물들은 ISEAS의 연구진이 편집자로 참여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외부 필자들의 연구 결과를 출판하고 있다. ISEAS는 세계 유수의 기관, 예컨대 세계은행, OECD 등과도 ‘싱가포르 렉처’라는 공동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싱가포르를 넘어 전 세계의 정책 지식을 환류하는 활동을 한다.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국빈들이 주로 강연에 참여하는데, 우리나라의 김대중,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넬슨 만델라, 일본 총리 등 싱가포르에 오는 정상들이 참여하였다. 또 ASEAN-ISIS라는 아세안 각국의 전략문제연구소들의 네트워크가 있다. 물론 ASEAN-ISIS가 독자적으로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공식 부문의 전문가, 지식인들의 교류, 즉 트랙 2 외교를 통해서 정부 간 공식외교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홍일표

일본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아세안 지역에 ‘지적 투자’를 해오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와 비교하여 한국은 어떤 상태이고 앞으로 아세안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고자 한다면 노력과 전략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박번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경제정책 분야의 일본의 개입과 활동이다. 태국개발연구원(TDRI; Thailand Development Research Institute)이 1984년에 설립될 당시 미쓰이상사, 도요타자동차 등 일본 기업들이 대거 출연금을 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세안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저로서는 일본의 아세안에 대한 지식사회 영향력에 대해서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일본의 아세안 싱크탱크 분야에서 획기적 개입은 ‘아세안 및 동아시아 경제연구소(ERIA; Economic Research Institute for ASEAN and East Asia)’의 창설이다. 일본은 2000년대 초 아세안의 역내 경제통합과 정책 조화와 관련된 연구소 설립을 제안했다. 2006년 4월 일본의 경제산업성 장관인 니카이(Toshihiro Nikai)가 역내의 발전격차를 해소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ERIA 창설을 주장하면서 10년 동안 100억 엔을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마디로 아세안의 경제통합 과정에서 필요한 역내 국가 간 정책연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는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이 자금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본이 주도하고 있다. 이후 ERIA는 일본 학자들을 중심으로 아세안의 다양한 개발 문제, 장기비전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개발계획을 수립할 역량이 부족한 아세안의 입장에서는 ERIA는 긍정적으로 보이고 실제로 아세안의 미래 계획은 ERIA가 만든 계획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중국이 거대한 하드파워를 앞세워 아세안에 영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소프트파워로 대응하는 것이고 당연히 일본의 국익을 관철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사실 ERIA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기관이나 다름이 없어 우리가 개입할 여지는 별로 없다. 우리의 일종의 제2의 ERIA를 설립하자는 주장도 큰 의미가 없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것이고 이미 ERIA가 축적한 지식정보를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밖에 사회문화 영역의 ERIA인 사회문화연구소를 설립하자는 견해도 있지만, 사회문화의 역내 협력에 대한 수요가 경제 분야만큼 크지 않은 상태에서 비용 대비 편익이 크지 않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한국이 KDI와 같은 미얀마에 MDI 연구소 설립을 지원하며 건물도 완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곧 발족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나 군부의 쿠데타로 더 이상 진전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홍일표

지적 교류와 협력은 경제·인문사회연구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책지식 생태계 차원에서도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양한 플랫폼들에서 연구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연구 기반, 연구자, 연구역량, 연구 분야 등에서 한계가 지적되고 있는데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어떤 부분의 개선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홍일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사무총장

박번순

아세안의 한국에 대한 시각은 이중적이다. 일반 국민은 K-컬처를 즐기며 한국에 좋은 시각을 갖고 있지만, 아세안 지식인들의 인식과 신뢰도는 매우 낮다. ‘한류’는 문화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의미가 있다. 동남아의 정치 지도자나 리더의 시각에서 볼 때, 동남아 사람들이 한류를 즐기는 것은 국가의 정체성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간극을 메꾸기 위해서는 아세안에 대한 우리의 지식생태계를 고도화하여 아세안의 정책 결정자 그룹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경제적 이익 중심의 접근 방식에 있다. 심지어 신남방정책이 평화와 사람을 강조했음에도 아세안에서는 이를 전략이라기보다는 경제적 목적을 가진 정책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아세안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아세안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는 학계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을 비롯하여 서울대학교, 서강대학교 그리고 지방의 유수한 대학에서 아세안 연구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아세안 협력이나 기업의 진출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연구 재원의 부족 때문에 기초연구보다는 외부 발주용 프로젝트성 연구, 즉 진출 전략과 관련한 연구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세안의 연구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의 양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지식의 축적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모두 열악하다. 대학에서 연구소는 만들지만, 아세안에 대한 강의는 별로 개설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설령 우수한 자원이 아세안학을 공부하고 싶어도 불안한 미래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국책연구기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나, 아세안 연구는 몇 가지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한다. 첫째, 연구 영역을 경제뿐만 아니라 국제관계, 사회문화 심지어는 종교와 민족 간의 갈등 문제까지 확대해야 한다.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아세안 전략을 마련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둘째,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연구기관 평가지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평가는 주로 우리나라 정책에 얼마나 즉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기초연구에 정책의 적용 가능성을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평가를 세분화하여 정부가 필요로 하는 정책연구와 기초연구로 구분하여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셋째는 공동협업 연구의 확대이다. 저도 신남방정책 평가라는 공동연구에 참여했지만, 원칙적으로 경제·인문사회 연구회의 협동연구는 소관 연구기관과의 협동연구이다. 종합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이 범위를 넓혀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 국책연구기관들의 연구직을 보면 전공과 관계 없는 영역을 연구하거나 정부의 정책지원을 위한 단기 프로젝트에만 집중하다 보니 전문성 축적이 어렵다. 3~4년 정도 경력이 쌓이면 대학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문제이다.
대전환기에 어떻게 보면 정책연구는 사양산업일 수도 있다. 국책연구기관이 개인의 네트워크 개발과 연구자의 역량강화에 힘을 써야 하는 이유이다.

홍일표

국내에서는 아세안 또는 아세안 싱크탱크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은 만큼 아세안에 대한 연구가 아직 취약한 것 같다. 아세안과의 협력을 위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앞장서서 노력하겠다. 복잡한 이야기를 잘 요약해주셔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