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 사회는 디지털 기술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였다. 비대면·비접촉을 지향하면서 디지털 키오스크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2000년대 초에 기대하던 비대면 결제와 로봇 카페 같은 기술들이 일상에 깊이 파고들었다. 2022년 11월 공개된 오픈AI의 챗GPT(ChatGPT)는 디지털을 넘어 인공지능이 생활 속에 녹아든 마일스톤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만큼 그로 인한 우려도 증가하고 있어 앞으로의 기술 변화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상상을 현실로, 급격하고도 놀라운 미래 디지털 기술
대중들에게 친숙한 챗GPT는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용자가 원하는 내용을 입력하면 텍스트를 자동으로 생성하거나 이미지, 영상과 음악 제작에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 인터넷 뉴스 기사에서는 인공지능이 작성한 간단한 동향과 짧은 글, 생성형 인공지능이 제작한 삽화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산업 현장에서도 고위험 작업 대체, 자재를 운반하는 자율로봇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은 생성형 기술을 넘어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핵심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은 단순히 컴퓨터나 모빌리티를 매개로 작동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생각과 행동에 직접 연결되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ink)가 개발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다. 이 기술은 말 그대로 사람의 뇌와 컴퓨팅을 연결하는 것이다. 뇌파를 해석하여 기계를 작동할 수도 있고 음성이나 문자로 전환해줄 수도 있다. 대중들이 바라는 미래상 중에서 사람들과 다른 언어로 실시간 소통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다. 뉴럴링크는 2024년 1월과 7월, 척추 손상 환자 두 명에게 칩 이식 시술을 진행했다. 두 환자의 대뇌 운동피질 영역에 칩을 삽입한 결과, 1월에 시술받은 환자는 생각만으로 컴퓨터 마우스를 움직이는 등 칩 이식 시술 이전과 달리 편하게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시행착오를 거치는 단계지만 과거 영화에서나 보던 ‘생각만으로 기계를 작동하는 기술’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도화되는 디지털 기술은 이동의 격차와 생산활동의 격차를 줄이고,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급속히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사회 구성원의 우려를 해소하려면 ‘사람에 의한 기술’을 ‘사람을 위한 기술’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 진화의 양면성
기술은 사회에 적용되면서 성능이 고도화되고 진화한다. 이 진화 과정에서 기술은 기존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풀고, 새로 풀어야 할 문제를 던지기도 한다. 인공지능과 같은 디지털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인공지능에 대한 기대가 우려로 바뀌고 있다. 과연 디지털 기술의 진화로 사회 격차가 진정 해소될까? 디지털 기술에 대한 기대가 여전할까?
고도로 발전된 기술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증기기관은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지만 사람들에게 일자리의 위협을 느끼게 하였다. 최근 고도화된 인공지능의 도입은 업무 효율성 증진과 생산성 향상, 고위험 작업 대체 등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일자리 대체의 위험성, 나아가 딥페이크와 같이 비윤리적이고 무작위적으로 범람하는 범죄 생산물에 대한 공포를 야기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그림과 영상은 신기함을 자아냈지만 딥페이크 피해 사례가 늘어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딥페이크 피해자는 2년 만에 30배나 급증했으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10대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2024년 하반기에 큰 파장을 일으킨 학교 딥페이크 성범죄는 신기술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를 현실화하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에서 사람들은 알파고의 놀라운 성능에 경탄하면서도 인류 대표인 이세돌 9단의 패배로 인해 불안의 씨앗을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기술은 초기 공개 단계에서는 높은 기대를 받지만, 우리 사회에 실제로 자리 잡는 단계에서는 부작용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야기하는 격차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정보 검색과 무작위적 정보에 대한 사실확인을 보조하며 기존 정보 습득에 한계가 있던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AI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방지는 디지털 격차 해소의 일환으로 노인 세대를 보호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뉴럴링크와 같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보행 보조 로봇과 같은 웨어러블 로봇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발전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다. AI와 로봇의 활용이 확대되면서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기술은 누구나 접근 가능해야 하며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기술은 명과 암을 모두 가진 채 사회와 함께 진화한다.

사람에 의한 기술, 사람을 위한 기술로 발전시켜야
급속히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사회 구성원의 우려를 해소하려면 ‘사람에 의한 기술’을 ‘사람을 위한 기술’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먼저 ‘사람에 의한 기술’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인공지능의 윤리와 규제로 대표된다. 인공지능과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더라도 기술의 개발과 통제의 주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 개발과 활용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가 대두되면서 각국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규제 마련에 나섰다. 유럽연합(EU)에서는 ‘인공지능법’ 을 통해 사람을 위협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억제하고자 하였다. 미국에서도 인공지능 규제를 강화하였으나,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인공지능 규제를 완화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공지능 개발을 촉진하는 법(인공지능 진흥법안 등)과 인공지능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법(인공지능 안전 및 신뢰법 등) 등 인공지능법안이 다수 발의되었다. 이러한 법들은 기술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기술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안전한 울타리를 형성하려는 시도다. 인공지능 기술뿐만 아니라 자율주행, 로봇,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등 디지털 기술들도 마찬가지다. 혁신적인 기술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더라도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선제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미래 디지털 기술의 근간이 되는 기술의 영역을 설정하고 해당 기술의 윤리적 범주를 탐색해야 한다. 기술 혁신의 창발적인 속성을 고려해 미래에 등장할 기술들이 속하는 분야의 환경과 혁신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다음으로 기술이 ‘사람을 위한 기술’로서 보조적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기술은 대개 기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명되고 많은 사람이 선택하면서 혁신으로 간주된다. 오늘날 많은 기술이 사회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활용되고 있지만, 모든 격차를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기존에 정의되었던 격차가 해소되더라도 새로운 유형의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기술이 진화하듯 격차의 개념도 진화하면서 격차가 더 벌어질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사회와 기술이 함께 발전하려면 기존의 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새롭게 생길 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2001년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을 제정·시행하였으며, 2009년에는 「국가정보화 기본법」에 편입하였고, 2020년에 「지능정보화 기본법」으로 개정하였고, 2024년 「디지털포용법」을 제정하였다. 이렇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법과 제도를 조정함으로써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이처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두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수준에서 새로 발생한 격차 해소를 위한 방안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향후 발생할 격차를 미리 전망하고 격차 심화를 억제하기 위한 대비책들을 마련하여 미래의 기술들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작용을 억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기술과 사회가 더 나은 방향, 즉 ‘정’의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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