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진영에 희색이 만연하다.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에 무릎을 꿇었던 애리조나, 조지아,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주요 경합 주에서 지지도가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6월 27일 열린 대선 후보 첫 TV 토론 완승에 이어,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유세장에서 발생한 총격으로 트럼프가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굳히며 승기를 잡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뢰밭인 선거판, 11월까지는 긴 시간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선거판은 원래 지뢰밭이 아닌가? 11월까지는 여전히 긴 시간이 남아있다. 트럼프를 위협하는 것은 교체된 민주당 해리스 후보나 사법부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열렬 팬덤일 수 있다. 사랑과 증오는 함께 요동치는 쌍둥이 감정이기에 하는 말이다.
이제 통상정책을 중심으로 두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자. 내셔널리스트 트럼프가 백악관에 다시 입성한다면 그는 ‘균형무역’, ‘공정무역’, ‘상호무역’을 내세우며 무역수지와 방위비 분담을 둘러싸고 우방국까지도 강하게 압박해올 전망이다.
트럼프: 보편적 관세부과, 바이든 정책 폐지, 대중 공세 강화
트럼프의 통상정책 공약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보편적 관세부과 도입과 상호무역법의 제정이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외국 상품에 대해 10%, 중국산은 60% 관세율 부과를 예고했다. 또한 상호무역법을 제정해 상대국의 관세에 상응하는 세율로 미국의 관세를 조정할 계획임을 밝혔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구조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관세율을 지속적으로 올릴 것임을 천명했다.
둘째는 바이든 정책의 폐지 혹은 수정이다. 친환경정책인 그린뉴딜이나 기업평균연비(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CAFE) 규제는 폐지될 것이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와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ineral Security Partnership, MSP)은 폐기 수순을 밟을 게 확실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또한 수정이 불가피한데 트럼프가 화석연료와 전통 제조업에 큰 관심이 있어 친환경규제, 전기차 보조금, 기후정책 등에서 큰 변화를 보일 것 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화석연료 시추 허가 절차를 완화하고 전기자동차 의무화, 자동차 배출량 감축정책 등을 폐지하며 파리협정을 재탈퇴할 가능성이 크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나 반도체법의 시행에서도 외국 기업을 차별할 소지가 엿보인다.
셋째는 ‘중국에 대한 거친 공세(Tough on China)’ 강화이다. 대중 정책은 초당적인 영역이지만 대중 수출통제, 투자통제, 기술통제, 중국 아웃소싱기업 연방계약 금지 등 트럼프의 공약은 민주당보다 강력하다. 미국 무역법 301조 ‘불공정시정(무역상대국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협상·보복 조치 규정)’과 무역확장법 232조 ‘국가안보위협대응(미국의 국가안보를 저해한다고 판단되는 수입물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수입을 제한)’ 적용의 확대와 재발동, 무역구제조치 추가 등이 예상된다. 바이든이 우방국들과 함께 다자적 압력을 중국에 가했다면 트럼프는 일방적 혹은 양자적 압박을 선호한다. 성공한 협상가로 자신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트럼프 발 대중, 대러시아 정책의 불확실성이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 우방국 특히 약한 고리를 겨냥해 사이를 갈라놓은 쐐기 전략(wedge strategy)을 구사해 서방의 전열을 흩트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 카멀라 해리스가 승리한다면 민주당의 핵심 어젠다인 환경과 노동권 보호 및 인권 향상에 더욱 집중하면서 주요 공급망 관리와 다자적 대중견제라는 바이든의 정책 기조를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가?
지금부터 110년 전인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당시 유럽 열강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지켜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꿈속에서 헤매던 몽유병 환자에 불과했다. 내셔널리즘의 팽창이 가져올 파괴적 결과를 알지도 못했고 두 차례 짧았던 발칸전쟁이 오히려 외교적으로 필요하다는 망상에 빠져들었다. 1871년 통일제국을 형성한 독일의 부상은 그 모호한 이데올로기와 함께 미래 예측을 불허했다. 그리고 1914년 사라예보 암살사건이라는 트리거 요인이 발생하게 된다. 이후 세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대공황, 인종청소, 스페인 독감 등 비극적 상황으로 치달렸다. 현재 상황을 마치 거대한 합리성이 지배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오는 위기를 맞았던 셈이다. 크리스토퍼 클라크(Christopher Clark, 2014)가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발간한 저서 『몽유병자들(sleepwalkers)』에 나오는 내용인데 그 분석의 유효성이 최근 학계에서 재조명받고 있다.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내셔널리즘이 확산일로에 있다. 경제적 내셔널리즘은 보호무역주의와 반이민정책으로 대표된다. 러-우 전쟁이 장기화되고 중동전쟁 또한 확전 일로에 있지만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은 여전히 평화 시대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다. 세계 2위 경제력을 가진 중국의 국가 정체성 혹은 지배 이데올로기 또한 모호하기만 하다. 만약 대만 사태가 무력적인 충돌로 발전하는 가운데 미국이 1917년 미연방법인 ‘적성국교역법’을 적용해 중국 자산을 동결하거나 모든 거래를 중단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경우 상황은 냉전(冷戰)이 아닌 열전(熱戰)으로 치달릴지도 모른다고 조셉 나이(Joseph Nye) 하버드대 교수가 경고하고 있다.
통상질서 변화, 우리의 대응책은?
우리 정부는 트럼프 재선에 대비해 ‘트럼프 네트워크’와 ‘대미 무역수지’를 집중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진영과의 접점을 늘리면서 에너지와 농산물 등에서 미국으로 과감하게 수입선을 전환하는 방식을 말한다. 2023년 대미 무역흑자가 445억 달러였고 올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우리 기업의 미국 투자에 따른 부품소재 수출에 기인한 바 크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발생 이유를 미국 조야에 잘 설명하면서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와 함께 구축한 다양한 한·미 협력체를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손댈 수 없게 제도화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 우리 기업들은 미국이 제기할 반덤핑, 상계, 세이프가드 등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한국이 중국의 우회수출 전진기지로 간주되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 이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 이란 및 시리아 등을 상대로 한 주요국들의 각종 제재에 관한 정확한 정보와 관련 정책을 파악하고 신속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시장과 기술 그리고 자원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을 영위해 왔다면 이제는 주요국의 정책 변화, 공급망 교란 가능성, 핵심기술 유출의 위험성, 데이터와 주요 인프라 보호 등의 위험 요인 관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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