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는 전통적인 사우스와는 달리 소극적이고 중립적인 외교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국제 분쟁에서 중재 역할을 확대하며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를 요구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최근 글로벌 복합위기로 서방 중심의 국제질서가 약화되면서 글로벌 사우스는 전략적 자율성을 통한 적극적인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급부상하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 강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급부상한 글로벌 사우스의 위상과 역할 확대
글로벌 사우스는 남반구에 위치한 130여 개 개발도상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극화된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 하에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특정 진영에 편입되지 않으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남남협력을 통해 개발도상국 간의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과거 경제적 규모나 정치적 한계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웠으나 최근 정치·경제적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2023년 8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된 제15차 BRICS(이하 브릭스) 정상회의에서는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란과 아프리카의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5개국이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들이 정식 회원국이 되면서 10개국으로 확대된 브릭스는 세계 GDP의 28%(IMF 2023 예측치), 전 세계 석유 생산의 43%를 차지하게 되었다.
정치외교적으로도 글로벌 사우스는 G7 중심의 기존 글로벌 거버넌스에 의문을 제기하며 다극화된 국제사회에서 균형적인 외교 노선을 추구하고 국제무대에서 ‘스윙국가’로서 실리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2022년 3월, 유엔총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고 철군을 요청하는 결의안에 대해 중국·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세네갈 등 글로벌 사우스 35개국이 기권하였으며 그해 11월, 러시아가 침략에 대한 구제·배상을 요구하는 결의 안에 대해서도 글로벌 사우스 73개국이 기권하였다. 특히 중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화해를, 브라질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플랜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에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준회원 자격을 얻기도 하였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변화와 브릭스 정상회의
글로벌 사우스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확산하면서 서방 중심의 국제질서가 약화되면서부터이다. 특히 G7 체제에 대응하여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정상이 함께 모인 브릭스 정상회의가 2009년 처음 개최된 이후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공식적으로 합류하였다. 제4차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인도의 제안으로 시작된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 NDB)의 설립은 인프라 확충뿐만 아니라 긴급외화준비협정(CRA) 등 개발도상국의 필요를 반영한 금융협력을 통해 브릭스가 단순한 신흥국 모임을 넘어 공통의 지향점을 가지고 실질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주요 선진국들은 경제적 차원에서 지역전략과 개발협력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프로그램을 강화해 왔으나, 미중 경쟁이 심화되면서 주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대응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6월 G7 정상회담에서 PGII(Partnership for Global Infrastructure and Investment)를 제안하며 개도국의 인프라 수요에 부응하고 글로벌 경제와 공급망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향후 5년간 2천억 달러 규모의 개발 재원을 조달하고 다자개발은행·개발금융기관·국부펀드 등으로부터 2027년까지 총 6천억 달러를 동원하여 기후 및 에너지, 정보통신, 양성평등, 보건 등의 분야를 중점 지원할 예정이다. 반면 유럽집행위원회는 2021년 12월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를 발표하여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응하는 EU 차원의 글로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22년 2월 제6차 EU-AU(유럽연합-아프리카연합) 회담에서 ‘아프리카 패키지’를 발표하며 아프리카 파트너와의 협력 강화를 위해 약 1,500억 유로의 투자가 포함된 아프리카-유럽 투자 패키지를 마련하고 아시아·태평양,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지역으로 점차 확대할 전망이다. 일본의 경우, 1993년부터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를 개최해 왔으며 최근에는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맞서 대규모 투자를 앞세우는 등 진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2022년 8월 제8차 아프리카개발회의에서 일본 기시다 총리는 튀니스 선언(TICAD8 Tunis Declaration)을 채택하고 2023년부터 3년간 정부와 민간이 총 300억 달러 규모의 지원을 차관과 투자 등의 형태로 아프리카에 투입한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2023년 5월 G7 회의에서 ‘파트너에 대한 관여 강화’라는 세션을 통해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중요 의제로 제시하였다.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기반 강화
글로벌 사우스의 위상과 영향력이 강화됨에 따라 우리나라도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국제적 리더십 제고를 위해 포용적 파트너십 강화가 필요하다. 최근 미중 패권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사회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글로벌 사우스는 비동맹 노선에서 적극적인 다자동맹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G20 정상회의 경우 인도네시아(2022), 인도(2023)에 이어 브라질(2024)과 남아프리카공화국(2025) 등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될 예정이어서 당분간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G20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보다 주도적인 입장과 역할을 확대해 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인도의 모디 총리는 G20 의장국으로서 포용적인 국제협력을 강조하며 아프리카 연합(African Union)을 회원국으로 가입시킴으로써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사우스를 중심으로 신흥경제권과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개도국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방안이 적극 모색되어야 한다. 미중간의 전략적 맵핑(strategic mapping) 변화로 정치·안보환경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으나 세력전이(power shift)와 안보 갈등에 대응한 외교지평의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작년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에 이어 올해 6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ODA 규모 세계 10위 수준을 달성하기 위해 2024년 ODA 확정액 규모를 6.3조 원으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국제적 리더십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복합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기반 강화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기후변화 대응과 같은 글로벌 도전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정책 공조와 협력기반 확충이 더욱 중요해질 전망이다. 특히 기후변화 및 글로벌 보건안보와 같이 개별 국가 차원에서 대응하기 어려운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들이 당면 도전과제로 제기되면서 개도국의 성장경로가 다양해지고 있다. 앞으로 단순한 자금지원 같은 ODA 공여만으로는 포용적 회복과 지속가능한 성장에 한계를 나타내고 있어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기반을 강화하고 글로벌 복합위기에 대응한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글로벌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여 무역 및 투자전략을 다각화하고, 다극화된 국제질서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기반 확대가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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