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가 대전환기, 국가정책의 나침반이 될 정책 설계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 정책 방향을 설계하기 위한 『2026 국가의제 종합연구』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이번 보고서는 5년 후 대한민국을 염두에 두고, 국책연구기관이 힘을 모아 중장기적 관점의 정책의제를 공동으로 발굴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로드맵이자 정책 실행과의 연계를 염두에 둔 이번 연구의 취지를 총괄 책임자에게 들어보았다.문 명 재 연세대학교 교수
Q 이번 『2026 국가의제 종합연구』 는 여러 연구기관이 함께한 공동 기획 연구입니다. 본 연구의 기획 배경과 방향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번 연구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6개 국책연구기관의 많은 연구자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협업 프로젝트입니다. 새 정부 출범이라는 정책 환경의 전환기에 맞춰, 향후 5년간 국가가 중점으로 추진해야 할 핵심 어젠다를 중장기 시각에서 도출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그간 많은 연구가 정부 부처의 요청에 따라 수행되어 왔다면, 이번 연구는 각 기관이 보유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의제를 발굴하고, 이를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연구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총괄자들의 전문성과 협업을 통해 발휘된 통합적 시각입니다. 각 기관에서 제안한 주제를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분야별 총괄자들이 모여 서로의 시각을 공유하고, 이견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충분한 조정 과정을 거쳤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장 연구자들의 문제의식과 총괄자들의 전략적 안목이 함께 녹아들어 기존 정책연구와는 또 다른 깊이와 통찰을 담아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보고서를 통해 선정된 의제들은 향후 정부부처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전략적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Q 보고서의 전체 구성과 주요 분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고, 핵심 의제들은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선정되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번 보고서는 총 6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제·산업, 사회·교육, 미래·과학기술, 외교·안보, 지방시대, 정치·행정 분야로 구분되며, 각 분야의 특성과 주요 현안을 고려하여 유연하게 편성하였습니다. 각 의제는 관련 배경, 핵심 이슈, 정책 방향, 기대효과까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으며, 향후 5년간의 정책 추진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중장기 로드맵으로서, 정책 실효성을 제고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또한 핵심의제는 시급성, 중요성 그리고 기존 정책과의 연속성을 기준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우선, 각 연구기관의 연구자들이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반드시 다뤄야할 의제를 bottom-up 방식으로 제안하였고, 이후 분야별 총괄 책임자들이 타당성과 우선순위를 면밀히 검토한 뒤 내부 논의를 거쳐 최종 의제를 확정하였습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총괄 책임자들이 모이는 총괄반 회의를 통해 의제간 중복 여부를 검토·조정하였습니다. 제안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포함이 필요한 의제는 외부 전문가 추천을 통해 보완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층적 검토 과정을 거쳐 중복을 없애고, 실현 가능성과 정책 적용 가능성이 높은 의제들을 선정하였습니다.
Q 우리 사회는 지금 복합적인 위기와 구조적 전환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번 국가 의제 연구는 어떤 의미를 가지며, 특히 보고서에서 주목할 만한 어젠다나 흐름이 있을까요?
우리는 단일한 변화가 아니라 여러 차원의 거대한 전환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대전환의 시대’에 서 있습니다. 이번 보고서의 핵심 키워드 또한 '대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AI, 기후 변화, 인구 구조 변화, 국제 지정학 변화 등 거대한 전환 요인들이 서로 얽혀 우리 사회 전반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각각의 개별 현상이 아닌, 상호 연결된 복합 구조 속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국가 의제 연구는 이러한 복합 위기 상황에서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이 준비해야 할 전략적 대응 방향을 통합적으로 제시하고자 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 다룬 의제들은 개별 주제를 넘어 네 가지 대전환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 속에서 구성됐습니다. 예를 들어, 디지털·AI는 기술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산업·행정·지역 서비스 전반의 구조를 바꾸는 핵심 플랫폼으로 다뤄졌습니다. 인구 대전환은 저출생과 고령화라는 통계를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을 재구조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지방분권 3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지방의 재도약을 위한 제도 개선과 재정자립 방안을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지방 내에서도 AI를 활용한 서비스 개선 등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었습니다. 외교·안보 영역에서는 트럼프 2기 출범 등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통상·안보 전략을 주요 의제로 설정했으며, 남북 관계의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신통일 구상'도 주요 의제로 포함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분야 간 경계를 넘는 통합적 시각으로 설계되어 주요 키워드 하나하나가 복수의 정책 영역에 걸쳐 등장함으로써, 대전환 시대의 교차점에서 우리 사회의 대응전략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Q 보고서가 단지 연구 자료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에 반영되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특히 실제 정책 기획과 실무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이밍과 정책 수요자 중심의 전달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경험상, 대부분의 정부 부처는 보통 연말쯤이면 다음 해 사업 계획을 거의 마무리합니다. 그 시점 이후에 보고서가 발간되면, 아무리 좋은 제안이라도 반영될 여지가 줄어듭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정과제 설계 시점에 맞춰 보고서를 완성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초기 단계일수록 제안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보고서의 전달 방식입니다. 보고서라는 형식 자체가 너무 장황하거나 복잡하면 바쁜 정책 결정자들이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의제별로 짧고 간결하게, 핵심 내용을 개조식으로 구성하여 의제 개요, 정책 제안 내용, 기대효과 등 핵심 정보만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추가적인 탐색이 가능하도록 관련 연구 성과와 과거 정책 보고서도 함께 언급했습니다.
각 의제마다 담당 집필자의 실명이 명시되어 있어 필요시 직접 연락하거나 자문요청 등을 통해 심화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습니다. 국가정책연구포털(NKIS) 등에 관련 연구 자료가 체계적으로 축적돼 있어 정책 정보를 찾으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탐색할 수 있습니다. 보고서가 하나의 정책 편집본 또는 전략적 정책 포트폴리오라고 보시면 됩니다.
Q 새로운 정부 출범 이후, 국책연구기관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특히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비교했을 때 우리가 보완해야할 점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들은 규모나 역량 면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수준입니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봐도 결코 밀리지 않는 연구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규모에 만족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보다 깊이 있게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그간 국책연구기관들은 개별부처의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연구를 수행하며 정책 현장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한 협동연구 등을 통해 기관 간 협업의 기반도 점차 마련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범부처적 연계를 더욱 활성화하고, 국가 전략 차원의 통합적 연구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연구기관 간 협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날의 사회 문제들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입니다. 단일 기관이나 단일 분야의 연구만으로는 충분한 해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협동 연구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국책연구기관 간 협업은 물론이고, 때로는 외부 전문가나 민간 부문과의 연계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협동 연구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연구기관 간 소통도 훨씬 더 활발해져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나 유인책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셋째, 우리 국책연구기관들은 이미 규모나 예산, 인력, 역사 측면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글로벌 싱크탱크로서의 명성이나 영향력은 아직 충분히 자리 잡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각 기관이 대표성과 지속성을 가진 플래그십 연구물을 만들어 나가야 할 시점입니다. 매년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정책 참고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대표 보고서 또는 정책 시리즈가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국내 정책 수요뿐 아니라 글로벌 이슈에 대한 대응과 정책 제안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이번 연구를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번 연구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지금이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전략이 필요한 때’라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는 복합적인 대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얽히고설킨 구조 속에서 우리 사회에 복합 난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체념하지 않고 변화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 SNS 빅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대전환’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한 감정은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 ‘무언가 바뀌길 바란다’는 집단적 열망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방향 전환과 비전 있는 해법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죠.
이번 보고서는 바로 그 기대에 응답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이 보고서가 국정 과제 설계, 부처의 중장기 전략 수립 등에서 실제로 활용되어, 5년 뒤에는 이 안에 담긴 제안들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선 정책 결정자들과 연구자들이 더 자주, 더 깊이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 보고서가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브릿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이번 보고서를 마주하게 될 정책결정자와 실무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책 결정자들은 통상 눈앞의 현안에 집중하느라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긴급 사안에 대한 빠른 대응도 중요하지만, 그런 접근만으로는 오늘의 해결책이 내일의 새로운 문제로 되돌아오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속가능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는 정책 설계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치 사진을 찍을 때 근거리와 원거리를 모두 봐야 제대로 된 구도를 잡을 수 있듯이, 정책도 현재와 미래를 함께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꼭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오늘날 정책이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현실의 문제와 제도적 틀이 맞지 않는 ‘미스매치’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21세기의 복잡하고 융합된 이슈들입니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려는 법·제도는 20세기 기준이고, 정책수단은 심지어 19세기의 틀을 그대로 갖고 있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AI 관련 정책을 보면, AI 기본법은 작년 말에 가까스로 통과되었지만, 시행령 등 후속조치는 아직 미비하고, 정책 수단은 보다 정비가 필요한 단계에 있습니다. 정책 결정자들이 보다 긴 안목을 갖고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이 보고서가 국정 과제 설계, 부처의 중장기 전략 수립 등에서 실제로 활용되어, 5년 뒤에는 이 안에 담긴 제안들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연구자들과 협력은 물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시각도 열린 자세로 수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연구자·실무자·정책 결정자 간의 접점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합니다. 일부 연구기관은 개별 부처와의 협업 경험이 풍부하지만,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들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한 기관, 한 부처가 단독으로 해결하기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 안보는 통상뿐 아니라 기술·노동시장·외교 등의 이슈와 밀접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여러 연구기관과 부처가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구조가 필수적입니다. 앞으로는 부처 간, 연구기관 간 경계를 넘는 협업의 장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문명재연세대학교 교수
2025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