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칼럼
글로벌 통상 중추국가 전략과 국책 싱크탱크의 역할
우리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질서로 전환되는 변곡점에 직면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본격화된 공급망 분절화는 미중 패권 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WTO 중심의 다자 무역질서가 현저히 약화된 가운데 주요국이 자국 산업 육성과 보호를 위한 통상·산업 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며 효율성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하는 경제안보 시대가 도래했다. AI 발전에 따른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기후변화에 대응한 탄소중립 논의는 새로운 통상규범을 형성하면서 기회이자 도전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통상정책 추진 전략
개방경제 구조에다가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이러한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대외정책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정부는 「글로벌 통상 중추국가」라는 비전 아래 우리의 경제운동장을 넓히고 경제안보를 수호하며 새로운 통상질서 형성에 적극 참여하는 통상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다자무역체제가 약화되면서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FTA 체결을 확대하고 무역투자촉진프레임워크(TIPF), 경제동반자협정(EPA) 등 다각적인 통상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우리의 경제운동장을 지속 확대해 나갈 것이다. 그간 전 세계 GDP 85%에 달하는 국가들과 체결한 FTA네트워크는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하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앞으로는 수출시장 다변화 및 공급망 안정 측면에서 풍부한 인구와 자원을 가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FTA를 포함하여 TIPF·EPA 등 상호호혜적인 통상네트워크를 구축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주요국과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첨단산업·공급망 관련 통상 리스크를 안정적으로 관리함으로써 경제안보를 수호하는 통상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그간 정부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통상 이슈에 적극대응하여 북미 전기차 수출 증대, 우리 반도체 기업의 불확실성 완화 등 성과를 거두었고 일본과도 화이트리스트 복원을 통해 수출규제 현안을 해소하여 미래 협력기반을 마련하였다.향후에도 한미일 산업장관회의, 한미 공급망·산업대화(SCCD)를 비롯하여 다자 공급망 파트너십인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공급망 협정,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등을 통해 주요국과 첨단산업·공급망 전략적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첨단기술 보호를 위한 무역기술안보 제도를 개선하고 전략적 외투유치 등을 통해 공급망 안정화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디지털·탄소중립 등 새로운 통상규범 형성에 참여하여 우리의 이익을 반영해 나가고자 한다. 최근 디지털·환경·노동 등 새로운 통상의제가 전통적 무역장벽 수단과 결합되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례로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공급망 실사지침 등 각종 경제입법을 동시다발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자국우선주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우리 업계의 입장을 전달하고 기업의 대응역량 확충을 지원하며, 유사입장국과 공조하는 등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디지털·탄소중립 규범형성에도 주도적 역할을 강화해 나가고자 한다. 정부는 디지털경제동반자협정(DEPA)에 첫 번째로 가입하고 한-EU 디지털통상협정을 추진하는등 디지털 통상의제에 적극 대응 중이며, 최근 부상하고 있는 AI와 관련된 국제통상규범 논의도 적극 참여할 것이다. 재생에너지·수소·원전 등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를 활용하는 무탄소 에너지(CFE) 이니셔티브의 국제 확산을 통해 탄소중립 관련 규범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국가 미래정책의 핵심인 통상정책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종합적 싱크탱크이자 연구기관 네트워크 허브로서 더욱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통상정책을 지원하는 국책 싱크탱크 강화
통상정책 추진 역량 확보와 인프라 강화를 위해서는 정부·기업·학계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한다. 특히 국가정책연구의 중심역할을 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하 경인사연) 및 소관 국책연구기관의 통찰력과 축적된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통상정책이 다양한 이슈와 결합되어 복잡해지는 만큼, 경인사연에서는 통상 관련 국책연구기관 간 협업을 촉진하여 통합적·거시적 전략 수립에 기여할 수있도록 지속 노력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탄소중립, 첨단산업 기술·인력 확보 전략 등 학제간 분야를 넘나드는 이슈에 대해서는 국책연구기관 간 통섭연구를 통해 연구의 전문성과 시의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통상이슈의 성격을 감안해 경인사연 차원에서 국제 싱크탱크와 공동연구 및 전문가 교류를 활성화하는 등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공급망 같은 국제 협력이 필요한 이슈의 경우 싱크탱크 간 정책 어젠다를 공유하고 공동 의제를 설정하여 연구를 진행한다면 더 창의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업계·학계등이 참여할 수 있는 국제 네트워킹 행사를 지속 개최하여 상호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주요 통상이슈에 대한 한국의 시각을 전달하고 우리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한다면 정부의 정책 추진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해외 유수 연구기관과 전문가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고 파트너십이 강화된다면 우리 국책연구기관의 경쟁력도 더욱 제고될 것이다.
필자는 평생 글로벌 통상질서 연구에 천착해 온 학자이자 한국의 통상정책을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통상교섭본부와 경인사연과의 긴밀한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향후 통상교섭본부와 경인사연 및 소관 연구기관 간 글로벌 통상환경 흐름에 대해 정보를 수시로 공유하고 대응전략을 함께 모색하는 체계적 협업 관계를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경인사연이 국가 미래정책의 핵심인 통상정책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종합적 싱크탱크이자 연구기관 네트워크 허브로서 더욱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정인교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2024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