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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INSIGHT: X이벤트 ⑦] X이벤트로부터의 취약성과 회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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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INSIGHT: X이벤트 ⑦] X이벤트로부터의 취약성과 회복력 대표이미지
  • 발행기관경제ㆍ인문사회연구회

주요내용

정지범 UNIS도시환경공학부 교수


2021년 2월 텍사스, 선 벨트(Sun Belt)라고 불리는 따뜻한 지역에 갑자기 한파가 몰아닥쳤다. 이맘때 이 지역은 영상 10도에서 20도 사이를 오가는 따뜻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2021년의 2월은 달랐다. 텍사스주 댈러스는 영하 16도까지 떨어졌고, 일부 지역은 북극권에 가까운 알래스카주보다 더 추웠다. 기록에 따르면 근 100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였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추위는 텍사스주의 모든 전력시설에 큰 타격을 주었다. 천연가스, 석탄, 풍력 등 전력원을 가리지 않고 발전시설이 얼어붙어 광역 대정전을 일으켰다. 텍사스 대부분의 주택은 더위를 막기 위한 설계는 잘 되어 있는 편이었지만, 추위를 막기 위한 시설은 전무했다. 거기다 정전까지 발생하다 보니 주민들의 모든 삶이 마비되었고, 곳곳에서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X이벤트, 블랙스완


전형적인 X이벤트요, 블랙스완(black swan) 현상이었다. 기존의 상식과 역사적 통계를 무시하고 발생하는 이러한 현상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 불가능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합리적이지 않았다. 텍사스도 그랬다. 일반적으로 발전시설의 내한·동결 방지 장치들은 고비용 시설이다. 따라서 1년 내내 춥지 않은 날씨의 텍사스주에서는 이러한 고비용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근 이런 검은 백조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몇십 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한다고 가정했던 기존 설계기준을 뛰어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 시간당 100mm 이상의 집중호우는 그 발생빈도가 매우 낮아서 그동안 대비가 부족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몇 년에 한 번씩 발생하여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도 그렇다. 우리가 메르스 사태을 경험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지구적 판데믹을 다시 경험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경제위기도 마찬가지다. 최근 주가지수가 3,000을 넘고, 비트코인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지만, 곳곳에서 위험신호가 울리고 있고, 언제 다시 지구적 경제위기가 찾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세계가 이러한 초불확실성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면한 기후변화일 것이다. 기후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양상은 기후쇼크(climate shock)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단순히 더워지는 현상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한파와 더위가 반복되거나 엄청난 집중호우 혹은 장기간의 가뭄을 가져오기도 하는 등 매우 큰 변동이 발생하고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기술의 발달과 세계화 효과이다. ICT 기술과 교통기술의 발달은 전 세계를 좁아지게 만들었다. 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전환되고 있고, 금융 시장 역시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었다. 좁아지고 빨라졌으며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복잡하게 연결되었다. 기본적인 복잡성의 증가와 함께, 그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결국, 세계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은 초불확실성의 시대에 빠져들었고,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더 많은 검은 백조들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취약성과 회복력 –  전세계 학자들의 연구 동향


지구적 초불확실성 하에서 우리 사회의 취약성(vulnerability)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의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앞서 제시한 텍사스 한파와 같은 예기치 않은 사태에 대비하여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할까? 텍사스와 같은 더운 지역에 한국식 온돌을 보급하고, 모든 가정에 보일러를 설치하여 추위에 대비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해서 우리도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을 폐쇄하고 10m 높이의 방파제를 세워야 할까? 초불확실성 시대에 대한 대안은 과연 무엇인가?

UNIST 재난 정책 및 안전디자인 연구실에서는 최근 “취약성”(vulnerability) 키워드를 중심으로 계량서지학적(bibliometric) 분석을 통해 약 20년간 국제 학계의 연구 동향을 분석했다.1) 이 분석은 Clarivate Analytics사의 웹오브사이언스(Web of Science, WOS2)) 데이터베이스에서 재난관리 분야의 논문들을 대상으로 “취약성(vulnerability)”을 키워드로 갖는 논문들을 검색하고, 취약성과 함께 동시에 나타나는 다른 키워드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네트워크 분석을 수행했다. 2000년 이후 인류 사회가 초불확실성의 시대로 변화하면서, 사회의 취약성에 관심을 두는 논문들이 대폭 증가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사진


<그림> 2000년부터 취약성 키워드와 동시출현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 결과 (5년 단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재난관리 분야 취약성은 지구적 기후변화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기후변화가 일종의 기후쇼크의 형태로 나타나면서 다양한 대형 재난이 빈발하고 있고, 이에 따른 취약성이 학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또 한가지 뚜렷하게 확인되는 변화 중 하나는 적응(adaptation)과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키워드가 점점 더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최초 2000년-2004년의 그림에 비하여 2015년-2019년의 그림에서는 적응과 회복력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난관리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기후변화는 이미 막거나(preventing) 완화하기(mitigation)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변화된 환경에 적응(adaptation)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학자들이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즉 변화된 기후위기 환경에 적응하고, 사회의 회복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연구 동향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는 미래에 대한 사회의 회복력 증진 방안


회복력은 최초 생태학 분야에서 출발한 개념이다. 하지만 기후변화 등 미리 막기 어려운 충격이 늘어나면서 재난관리 분야에서 활발하게 채택했고, UN-DRR (United Nations Office for Disaster Risk Reduction)3) 등 국제기구 및 영미권 국가들이 적극 보급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정치적 구호로서 활발히 사용되었다. 특히 최근 미국 대선 상황에서 코로나19, 경제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하여, 조 바이든은 회복력의 핵심 구호 중 하나인 "더 나은 회복(Build Back Better)"을 슬로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회복력이 공학, 재난관리, 심리학, 경영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도입도면서 회복력, 복원력, 회복 탄력성 등 다양한 형태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 전반에의 영향과 통합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회복력”으로 통일되고 있는 인상이다. (제4차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에서도 공식적으로 “회복력”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회복력은 X 이벤트 등 초불확실성 시대에 매우 적합한 시스템적 적응 기제가 될 수 있다. 초불확실성 시대에서 미래의 다양한 위험을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 정확히 표현한다면 미래의 상상가능한 모든 위험에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더라도 매우 비효율적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나 초대형 폭풍에 대비하여 모든 해안가에 방파제를 건설하는 것은 안전은 도모할 수 있을지 모르나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고, 그것보다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양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 경제 위기에 대비하여 국가의 모든 노력을 현재의 자산을 지키는 데만 집중한다면 미래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국가적 발전을 도모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재난들은 경험하는 것을 각오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사회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버텨내고, 그 피해로부터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타당하다는 것이다. 회복력 개념은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전략적 요소를 제시하고 있으나, 종합하면 위험에 잘 버텨낼 수 있고(robustness),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하고(rapid, flexible), 실패하더라도 대체할 수 있으며(redundancy), 충분한 여유(resourcefulness)가 있어야 함이 강조되곤 한다. 


필자는 한국 사회가 택할 수 있는 X이벤트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방향을 “한국 사회의 회복력 강화”로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전략적 대응 방안은 한국인의 역사적, 문화적 특성에 매우 적합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민족성을 표현하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인들은 매우 “급하고”, “임기응변에 능하고”, “영리하며”, “쉽게 포기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몽골의 침략, 임진왜란, 한국전쟁 등 수많은 외침을 극복했고, 현대 사회에 와서도 IMF 경제위기 등 많은 어려움을 극복했다. 대부분은 미리 준비하여 완벽하게 예방했다기보다는 “버텨내고, 빠르게 적응하고, 회복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죽하면 일부 네티즌들은 “취미가 국난극복인 대한민국 국민들”이라는 농담을 하기도 할까? 실제로 회복력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강인(强靭)함을 강조하곤 한다.


태생적으로 한국인의 문화와 체질에 회복력이 자리 잡았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에 회복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고민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어떠한 시설이나 기관의 설치를 의미하기보다는 사회 전반의 문화와 행태의 변화를 의미한다. 한국 행정부의 강한 관료제 시스템은 미래 위험 대응을 위해 적합한 조직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보다 융합적이고, 유연하며, 빠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와 같이 부처 간, 부서 간 경쟁을 유도하는 평가보다는 다른 조직과 효과적으로 협력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전 사회적으로 시행착오가 비판받기보다는 장려받을 수 있도록 하고, 모든 계획이 처음부터 완벽하기보다는 꾸준히 바꿔나가는 적응적 계획(adaptive planning) 사회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초불확실성 사회에서 처음부터 모든 계획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변화하는 상황에 맞추어 국가의 다양한 계획도 보다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적 여유를 높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1) KIM, B. J., JEONG, S. & CHUNG, J.-B. 2021. Research trends in vulnerability studies from 2000 to 2019: Findings from a bibliometric analysis. International Journal of Disaster Risk Reduction, 56, 102141

2) https://clarivate.com/webofsciencegroup/solutions/web-of-science/

3) https://www.undrr.org/


※ 해당 콘텐츠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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